열수분출공의 비밀, 태양 없는 생명

심해 바닥에 솟은 열수분출공 굴뚝 군락
태양이 닿지 않는 깊이에서, 굴뚝이 뜨거운 물을 뿜고 있었다.

1977년 갈라파고스 열곡 발견과 발견 당시의 충격

심해 탐사 장비를 다루는 조사선 갑판
1977년, 잠수정이 갈라파고스 열곡으로 내려갔다.

시작하기 전에 잠깐. 햇빛이 단 한 줄기도 닿지 않는 깊이에서, 어떻게 생명이 우글거릴 수 있을까.

1977년 이월이었다.

작은 유인잠수정 앨빈이 태평양 갈라파고스 열곡으로 내려갔다.

수심은 약 2500미터.

빛이 사라진 지 이미 오래인 완전한 어둠 속이었다.

그곳을 탐사하러 간 사람들은 생물학자가 아니었다.

우즈홀 해양연구소와 오리건주립대학교를 중심으로 모인 지질학자들이었다.

그들이 알고 싶었던 것은 생명이 아니었다.

해저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 지구 안쪽의 열류를 재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앨빈의 창밖에 나타난 것은 예상 밖의 광경이었다.

주변 심해수는 얼음처럼 차가운 약 이도.

그런데 어느 지점에서 물의 온도가 갑자기 수십도까지 치솟았다.

해저 갈라진 틈에서 뜨거운 물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바로 열수분출공이었다.

그리고 그 주위로, 믿기 어려운 생명의 무리가 펼쳐져 있었다.

커다란 조개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게들이 바위 위를 기어다녔다.

붉은 입을 내민 튜브웜이 숲처럼 빽빽하게 솟아 있었다.

햇빛이 없는 심해는 생명이 드문 사막 같은 곳이라 여겨졌다.

그런데 이곳은 정반대였다.

빛 한 점 없는 바닥이 생명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배 위에는 이 생물들을 다룰 전문가가 없었다.

지질 탐사였으니 생물학자를 데려오지 않았던 것이다.

표본을 제대로 보존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연구자들은 급한 대로 배에 있던 보드카에 생물을 담아 가져왔다고 한다.

술병 속에 담긴 그 낯선 생명체들은 곧 과학의 근본을 흔들게 된다.

당시 사람들은 이렇게 믿고 있었다.

모든 생명은 결국 태양에서 온 에너지에 기대어 산다고.

식물이 햇빛으로 양분을 만들고, 그 양분이 먹이사슬을 타고 온 세상으로 퍼진다고.

그러나 갈라파고스 열곡의 생명들은 그 통념을 정면으로 부수고 있었다.

태양이 닿지 않는 곳에서, 태양 없이 번성하는 생태계.

그것은 지구 생명에 대한 우리 이해가 완전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이 한 번의 잠수가, 생명이 무엇에 기대어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을 처음부터 다시 쓰게 만들었다.

화학합성(chemosynthesis): 광합성을 대체하는 1차 생산 메커니즘

열수공 주변을 덮은 미생물 군집
여기서는 빛 대신 화학 반응이 에너지를 만든다.

빛이 닿지 않는 심해. 그곳에도 생명은 있었다.

하지만 태양이 없는 세계에서, 무엇이 생명을 먹여 살리는가.

지상에서는 답이 분명하다. 식물이 햇빛을 받아 유기물을 만든다. 그 광합성이 모든 먹이사슬의 시작이다.

그러나 열수분출공의 어둠 속에는 잎도, 초록도 없다.

이 생태계의 바닥을 떠받치는 존재는 식물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세균과 고세균이다.

이들은 빛 대신 화학을 택했다.

분출공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물에는 황화수소가 가득하다. 미생물은 이 황화수소를 산화시킨다. 그 과정에서 화학에너지가 풀려나온다.

그 에너지로 미생물은 이산화탄소를 붙잡아 유기물로 바꾼다.

반응을 단순하게 그리면 이렇다. 황화수소와 이산화탄소, 그리고 산소가 만나 유기물과 황, 그리고 물이 남는다. 황을 태워 얻은 힘으로 생명의 재료를 빚어내는 것이다.

이 방식을 화학합성이라 부른다.

황화수소만이 유일한 연료는 아니다. 어떤 미생물은 수소를 쓴다. 어떤 미생물은 메탄을 쓴다. 철과 망간을 에너지원으로 삼는 대사도 확인되었다.

심해의 미생물들은 저마다 다른 광물의 언어로 살아간다.

이 개념은 뜻밖에도 오래되었다.

1887년, 러시아 미생물학자 세르게이 비노그라드스키가 토양 세균을 연구하다 화학합성이라는 발상을 처음 제시했다.

그는 빛 없이도 무기물만으로 살아가는 생명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때는, 하나의 생태계 전체를 화학합성이 떠받친 사례는 어디에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 증거가 나타난 것은 심해 열수분출공이 발견된 뒤였다. 개념이 태어나고 거의 한 세기가 지나서였다.

여기서 한 가지 오해를 짚어야 한다.

열수분출공의 생명은 흔히 태양과 완전히 무관하다고 이야기된다.

그러나 그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황화수소를 태우는 반응에는 산소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산소는 심해가 만든 것이 아니다.

바다 위쪽, 햇빛이 닿는 표층에서 광합성으로 만들어진 산소다. 그것이 차가운 물을 따라 심해까지 흘러내려 온다.

그러니 태양의 손길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여전히 이 어둠에 닿아 있다.

빛에서 완전히 독립한 것은 아니다. 다만, 빛에 의존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리프티아 튜브웜과 세균의 공생 시스템

붉은 관벌레 군락과 게
튜브웜은 입도 소화기관도 없이, 몸속 세균에 기대어 산다.

빛이 닿지 않는 그 뜨거운 바닥에도 숲은 자란다.

그러나 이 숲의 나무는 식물이 아니다.

붉은 깃털을 세운 관, 자이언트 튜브웜이다.

학명은 리프티아 파킵틸라.

이 생명은 다 자라면 길이가 이미터에 이른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몸이다.

그런데 이 몸에는 입이 없다.

소화관도, 항문도 없다.

먹지 않는 동물이 어떻게 이 크기로 자랄까.

답은 몸 안에 숨어 있다.

리프티아의 몸통 속에는 트로포솜이라는 특별한 기관이 있다.

그 안에서 리프티아는 화학합성 세균을 기른다.

세균은 황화수소를 에너지원 삼아 영양분을 만든다.

리프티아는 그 영양분에 전적으로 기대어 살아간다.

먹이를 사냥하지 않는다.

몸속 세균이 만든 양분을 그대로 받아 살을 찌운다.

동물과 세균이 하나의 생명처럼 얽힌 공생이다.

그렇다면 세균에게 필요한 원료는 누가 나르는가.

바로 몸 밖으로 나온 붉은 깃털, 플룸이다.

이 깃털이 붉은 이유는 헤모글로빈 때문이다.

우리 피를 붉게 물들이는, 바로 그 단백질이다.

하지만 리프티아의 헤모글로빈은 특별하다.

산소와 황화수소를 동시에 붙잡을 수 있다.

바닷물 속 산소를 쥐고, 열수 속 황화수소를 함께 쥔다.

그리고 그 둘을 몸속 트로포솜까지 실어 나른다.

세균은 그 원료로 영양분을 빚는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이 있다.

황화수소는 대부분의 동물에게 맹독이다.

세포 호흡을 멈추게 하는 위험한 기체다.

그러나 리프티아의 특수한 헤모글로빈은 이 독을 안전하게 붙들어 처리한다.

독을 무기로 바꾼 몸이다.

그런데 이 정교한 공생은 태어날 때부터 완성된 것이 아니다.

성체 리프티아는 세균을 부모에게서 물려받지 않는다.

알에서 깨어난 어린 유생의 몸속에는 아직 세균이 없다.

유생은 주변 바닷물 속에서 세균을 새로 받아들인다.

부모가 아니라 환경에서 얻는 방식, 수평 전달이다.

이 연구 결과는 하나의 물음을 남긴다.

어린 생명은 어떻게 수많은 미생물 가운데 자신의 동반자를 알아보는가.

빛 없는 바닥에서, 만남으로 완성되는 생명이다.

블랙 스모커와 열수 유체의 물리·화학

빛이 닿지 않는 심해에서, 뜨거운 물이 솟는다.

그 물은 놀랍도록 뜨겁다.

블랙 스모커라 불리는 분출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유체의 온도는 약 350도에서 400도까지 측정된다.

지상이라면 물이 벌써 수증기로 흩어졌을 온도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물이 끓지 않는다.

심해의 무게가 그것을 막고 있다.

수백기압에 이르는 압력이 물을 짓눌러, 끓어오를 자리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물은 액체인 채로, 조용히 솟아오른다.

솟아오르는 유체는 검다.

이름 그대로, 검은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그 검은빛은 유체 속에 녹아 있던 금속 때문이다.

땅속 깊은 곳을 지나며 물은 철과 구리, 아연 같은 금속을 품는다.

뜨거운 유체가 차가운 바닷물과 만나는 순간, 그 금속들은 황과 결합해 황화물로 굳는다.

녹아 있던 것이 순식간에 검은 알갱이로 침전된다.

그 침전이 연기처럼 번지며, 검은 기둥을 만든다.

그리고 이 침전은 흩어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분출구 둘레에 차곡차곡 쌓인다.

금속 황화물이 겹겹이 굳으며, 굴뚝 모양의 광체가 자라난다.

침니라 부르는 그 구조물은, 빠를 때는 하루에 수십센티미터씩 높아지기도 한다.

돌로 된 굴뚝이, 살아 있는 것처럼 하늘을 향해 자라는 셈이다.

모든 분출구가 검은 것은 아니다.

어떤 곳에서는 좀 더 차분한 연기가 오른다.

화이트 스모커라 불리는 이 분출구는, 상대적으로 온도가 낮다.

그리고 검은 금속 대신, 바륨과 칼슘, 규소 화합물을 밝은 빛으로 흘려보낸다.

같은 심해의 열기에서 태어났으나, 서로 다른 색으로 숨을 쉰다.

이 굴뚝들이 오래도록 쌓아 올린 것은, 결국 금속 그 자체다.

대서양 중앙해령에 자리한 태그 열수지대 같은 곳은, 방대한 금속 광상을 품고 있다.

철과 구리, 아연이 심해 바닥에 광석으로 잠들어 있다.

그래서 이런 곳은 심해 채굴의 대상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생명을 키운 뜨거운 물이, 인간이 탐내는 광맥을 함께 남긴 것이다.

빛 없는 어둠 속에서, 물과 불과 금속이 서로를 빚는다.

생명의 기원 가설로서의 열수분출공

빛이 닿지 않는 바다 밑에서 생명이 살아간다는 사실은, 하나의 오래된 질문으로 우리를 이끈다. 생명은 대체 어디에서 처음 시작되었을까.

과학자 마이클 러셀과 윌리엄 마틴은 그 답을 열수분출공에서 찾으려 했다. 두 사람은 '알칼리성 열수공 기원설'을 세상에 내놓았다. 최초의 생명이 태양이 아니라, 바다 밑 뜨거운 틈에서 태어났다는 생각이다.

이 가설에는 실제 무대가 있다. 2000년, 대서양 한가운데서 발견된 '로스트 시티'라는 열수지대다. 잃어버린 도시라는 이름처럼, 그곳에는 하얀 탑들이 유령처럼 솟아 있다.

로스트 시티는 우리가 알던 열수분출공과 다르다. 물의 온도는 40도에서 90도로 비교적 낮다. 검은 연기를 뿜는 뜨거운 굴뚝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그리고 그 물은 강한 알칼리성을 띤다. 피에이치가 구에서 십일에 이른다. 이 온화한 성질이야말로, 초기 생명이 견딜 수 있는 조건이었을지 모른다.

무엇이 이 열과 물을 만들어낼까. 놀랍게도 화산 마그마가 아니다. 감람석이라는 광물이 바닷물과 만나 일어나는 '사문석화' 반응이다.

암석이 물에 젖으며 서서히 변해가는 동안, 열이 나오고 수소가 흘러나온다. 불이 아니라 돌이 스스로 데워지는 세계다.

러셀과 마틴이 주목한 것은 그다음이다. 로스트 시티의 탑 속에는 미세한 광물 구멍들이 벌집처럼 뚫려 있다.

그 얇은 광물 막을 사이에 두고, 안과 밖의 양성자 농도가 달라진다. 한쪽은 양성자가 많고, 다른 쪽은 적다. 이 기울기를 양성자 기울기라 부른다.

바로 이 지점이 핵심이다. 오늘날 모든 세포는 막을 사이에 둔 양성자 기울기로 에이티피라는 에너지를 만든다.

로스트 시티의 천연 광물 막이 만든 이 기울기가, 최초 대사와 에이티피 합성의 원형이었을지 모른다는 주장이다. 생명이 쓰는 에너지 방식이, 이미 돌 속에 준비되어 있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가설만이 유일한 답은 아니다. 오래전 다윈은 생명이 '따뜻한 작은 연못'에서 시작되었으리라 상상했다.

또 다른 과학자들은 육상의 온천 지대를 지목한다. 얕은 담수 온천에서는 인과 칼륨의 농도가 세포 안쪽과 놀랍도록 닮아 있기 때문이다.

깊은 바다냐, 얕은 육지의 온천이냐. 생명의 첫 자리를 두고 논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 정직해야 한다. 열수공에서 실제로 최초의 생명이 태어났다는 직접 증거는 없다.

지금까지의 성과는 실험실에서 그 조건을 재현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 돌과 물과 기울기가 생명의 문턱까지 갈 수 있는지, 우리는 아직 조심스레 지켜보는 중이다.

그럼에도 로스트 시티의 하얀 탑은 하나의 가능성으로 서 있다. 태양 없이도, 돌 하나가 생명을 꿈꾸게 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이다.

우주생물학적 함의 — 유로파·엔셀라두스

얼음으로 덮인 위성의 표면
같은 조건이 얼음 위성의 바다에도 있을 수 있다.

깊은 바다 밑, 태양이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 생명이 피어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확인했다.

그 발견은 이제 지구를 넘어선다.

토성을 도는 작은 얼음 위성, 엔셀라두스.

그 남극에서는 거대한 물기둥이 우주로 뿜어져 나온다.

카시니 탐사선은 이 분출 플룸 속을 직접 통과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수소를 검출했다.

미세한 규소 입자도 함께 발견됐다.

과학자들은 이 두 가지를 해저 열수활동의 흔적으로 읽는다.

규소 알갱이는 뜨거운 물이 암석과 만나야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수소는 그 열수공이 지금도 화학 에너지를 내뿜고 있음을 암시한다.

얼음 껍질 아래, 어두운 바다 밑바닥에 지구 심해와 닮은 굴뚝이 있을지도 모른다.

목성의 위성 유로파도 같은 가능성을 품는다.

두꺼운 얼음 표면 아래에는 액체 상태의 바다가 갇혀 있다.

그 바다는 아래쪽에서 암석 핵과 맞닿아 있다.

물과 뜨거운 암석이 만나는 그 경계에서 열수활동이 일어날 수 있다.

빛도, 광합성도 필요 없는 세계다.

그래서 지구 심해의 화학합성 생태계는 하나의 모델이 됐다.

태양광 없이도 생명이 살 수 있는 환경, 그 증거로서.

미항공우주국을 비롯한 기관들은 이 논리를 생명 탐사의 근거로 직접 인용한다.

에너지가 있고, 물이 있고, 화학 재료가 갖춰진 곳.

그런 곳이라면 생명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러나 여기서 멈춰야 한다.

에너지원과 시간과 화학 조건이 모두 갖춰진다 해도, 그것이 곧 생명은 아니다.

조건이 마련되는 것과 생명이 실제로 태어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지금 이 순간까지, 지구 밖에서 화학합성으로 살아가는 생명이 발견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다.

우리가 아는 것은 오직 무대가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뿐이다.

그 무대 위에 배우가 등장했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고래 사체(whale fall)와 냉수 분출공: 열수공 생태계와의 연속성

빛이 닿지 않는 심해에도, 이따금 거대한 죽음이 내려앉는다.

한 마리 고래가 수명을 다한다.

그 몸은 천천히 가라앉아, 어둠의 바닥에 닿는다.

이 사건을 과학자들은 '고래 낙하'라 부른다.

고래의 사체는 곧 심해의 오아시스가 된다.

부드러운 살이 사라진 뒤에도, 뼈는 오래도록 남는다.

그 뼈 속에는 지질이 가득 차 있다.

황산화 세균이 이 지질을 분해하며 살아간다.

세균은 황화수소를 에너지로 삼고, 그 위로 하나의 군집이 세워진다.

이것이 바로 고래 낙하 군집이다.

빛도 식물도 없이, 오직 죽은 고래의 뼈에 의지해 생명이 피어난다.

그 뼈를 파고드는 기묘한 생물이 있다.

'오세닥스'라 불리는 벌레, 별명은 좀비웜이다.

이 벌레에게는 입도, 위장도 없다.

대신 뿌리처럼 생긴 조직을 뼈 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 안에 사는 공생 세균이 뼈의 콜라겐과 지질을 대신 소화한다.

벌레는 스스로 먹지 않고, 세균이 건네주는 양분으로 살아간다.

고래 한 마리가 이렇게 오랜 세월 심해를 먹여 살린다.

그리고 심해에는 또 다른 화학의 샘이 있다.

'냉수 분출공'이라 불리는 곳이다.

이곳에는 열수공 같은 뜨거운 물이 솟지 않는다.

대신 차가운 해저 틈으로 메탄과 황화수소가 스며 나온다.

고온은 없지만, 화학 에너지는 흐른다.

그 에너지에 기대어, 열수공과 꼭 닮은 화학합성 군집이 자리 잡는다.

여기서 하나의 물음이 떠오른다.

열수공의 생물들은 어떻게 넓은 심해를 건너 퍼져 나갈까.

과학자들은 하나의 가설을 세웠다.

고래의 뼈와 냉수 분출공이 징검다리 역할을 했으리라는 것이다.

화학 에너지가 흐르는 이 작은 안식처들이, 어둠 속에 흩어진 발판이 되어 준다.

한 군집에서 다음 군집으로, 생명은 조용히 옮겨 간다.

빛이 없는 세계에도, 삶은 길을 찾는다.

극한 온도 내성 생물과 생명의 온도 한계 논쟁

빛이 닿지 않는 이 세계에도, 견딜 수 있는 온도의 끝은 존재한다.

그 경계를 몸으로 살아가는 생명이 있다.

폼페이 벌레라 불리는 알비넬라 폼페야나다.

이 벌레는 열수분출공 곁에 관을 짓고, 그 안에서 살아간다.

놀라운 것은, 몸 하나에 걸린 온도 차다.

머리가 놓인 자리와 꼬리가 잠긴 자리 사이에, 최대 약 60도에서 80도에 이르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한쪽 끝은 차가운 심해에, 다른 한쪽 끝은 뜨거운 물기둥에 걸쳐 있는 셈이다.

한 몸이 두 개의 온도를 동시에 견디며 사는 것이다.

그러나 이 벌레가 실제로 어느 온도까지 견디는지는, 아직 논쟁 속에 있다.

깊은 바닷속에서 온도를 재는 일은 쉽지 않다.

측정 장비의 위치, 물의 흐름, 관 안팎의 미세한 차이가 값을 흔든다.

그래서 보고된 수치에는 측정 오차와 이견이 함께 따라다닌다.

생명이 견디는 열의 한계를, 사람은 아직 정확히 붙잡지 못했다.

한편, 실험실에서 확인된 가장 뜨거운 생명은 벌레가 아니다.

메타노파이러스 칸들레리라는 고세균, 그중에서도 116번 균주다.

이 균주는 122도에서 증식할 수 있는 것으로 실험으로 확인됐다.

물이 끓는 온도를 넘어선 자리에서, 그것은 늘어나고 번져 간다.

지금까지 알려진 생명의 최고 증식 온도다.

하지만 이것이 진짜 상한선인지는 아무도 단언하지 못한다.

더 뜨거운 곳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생명이 있을지도 모른다.

생명이 견딜 수 있는 온도의 끝이 어디인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그 경계는 지도 위의 선이 아니라, 계속 밀려나는 물음표다.

태양 없이 시작된 이 이야기는, 이렇게 열린 채로 남는다.

빛 대신 열을 삼키고, 끓는 물가에서 몸을 늘리는 생명들.

우리는 그들 앞에서, 생명이라는 말의 경계를 다시 묻게 된다.

어둠 속 뜨거운 물기둥은, 지금 이 순간에도 조용히 무언가를 키우고 있다.

들어보긴 했는데, 진짜일까.
논문으로 확인하고 말합니다. — 진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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