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만든 약, 벌써 팔리고 있을까 — 확인해보니 3상 문턱
AI가 사람 일을 대신하는 자리는 이제 세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외국어를 번역하고, 코드를 짜고, 그림과 영상을 만들고, 회의록을 정리합니다. 병원에서는 엑스레이와 CT를 읽고, 공항에서는 얼굴을 알아보고, 은행에서는 이상 거래를 잡아냅니다.
그중에서 가장 값이 큰 자리로 꼽히는 것이 신약 개발입니다. 약 하나를 세상에 내놓는 데 10년 넘게 걸리고 조 단위 돈이 드는데, AI가 그 시간을 줄여준다면 계산이 완전히 달라지니까요.
그래서 이런 제목의 기사를 여러 번 보셨을 겁니다.
"세계 최초 AI 신약 탄생"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몇 개는 이미 나와서 팔리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확인해봤습니다.
먼저 결론부터 — 아직 하나도 없습니다
2026년 8월 현재, AI가 발굴하고 설계한 새로운 물질 중에 판매 승인을 받은 약은 없습니다.
가장 앞서 있는 두 개가 이 위치에 있습니다.
| 약 | 지금 어디까지 |
|---|---|
| 렌토세르팁 (rentosertib) 특발성 폐섬유증 | 2상 완료 · 3상을 2026년 7월 7일에 시작 |
| 자소시티닙 (zasocitinib) 건선 | 3상 성공 · 아직 승인 전 — 회사는 2027년 상반기 출시를 예상한다고 밝혔습니다 |
둘 다 아직 약국에도 병원에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미 나왔다"고 느껴질까
이유를 찾아보니 "AI가 만든 약"이라는 한 문장 안에 서로 다른 세 가지가 섞여 있었습니다.
| AI가 한 일 | 예 | 승인 | |
|---|---|---|---|
| ① | 표적도 물질도 AI가 찾아냄 | 렌토세르팁 | 없음 (3상 진행 중) |
| ② | 이미 있는 약의 새 쓰임새를 AI가 제안 | 바리시티닙 | 있음 |
| ③ | 계산·시뮬레이션을 도구로 사용 | 자소시티닙 등 | 계열에 따라 여럿 |
③까지 「AI가 만든 약」으로 세면 여러 개가 됩니다. ①만 세면 0개입니다. 기사 제목은 대개 이 구분을 하지 않습니다.
바리시티닙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원래 다른 회사가 류마티스 관절염 약으로 개발한 물질인데, AI 회사가 코로나 치료에 쓸 수 있겠다는 가설을 냈고 그 용도로 승인을 받았습니다. AI가 분자를 만든 것이 아니라 쓰임새를 찾아낸 것입니다.
가장 앞선 약의 논문을 열어봤습니다
렌토세르팁 2상 결과는 2025년 Nature Medicine에 실렸습니다. 초록만 보지 않고 본문까지 읽었습니다.
먼저 이 약이 무엇인지부터.
대상 질환은 특발성 폐섬유증입니다. 폐가 서서히 굳어가는 병이고, 원인을 모릅니다. AI 플랫폼이 이 병에서 TNIK이라는 단백질을 표적으로 새로 지목했고, 그 표적에 붙는 물질도 AI가 만들어냈습니다. 표적과 물질 양쪽 모두 AI가 한 첫 사례입니다.
논문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생성형 AI 기반 접근으로 표적 발굴 시작부터 전임상 후보 지명까지 불과 18개월, 0/1상 임상시험 완료까지 30개월 미만으로 단축했다"
이 숫자가 이 분야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기사에 없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하나 — 이 시험의 1차 목표는 효과가 아니었습니다
2상의 1차 평가변수는 「이상반응이 한 번이라도 생긴 환자 비율」, 즉 안전성이었습니다. 폐 기능이 아닙니다.
결과는 이렇습니다.
- 30mg 1일 1회 — 72.2%
- 30mg 1일 2회 — 83.3%
- 60mg 1일 1회 — 83.3%
- 가짜약 — 70.6%
군 사이에 비슷했고, 이것이 이 시험이 원래 보려던 것이었습니다.
둘 — 널리 인용되는 폐활량 수치는 2차 지표입니다
기사에 나오는 그 숫자입니다.
| 폐활량(FVC) 변화 | 95% 신뢰구간 | |
|---|---|---|
| 60mg 1일 1회 | +98.4 mL | 10.9 ~ 185.9 |
| 가짜약 | −20.3 mL | −116.1 ~ 75.6 |
먹은 쪽은 올랐고 가짜약 쪽은 내려갔습니다. 다만 이 지표는 2차 평가변수이고, 두 군을 비교한 p값은 논문 본문의 주요 결과에 제시돼 있지 않습니다.
셋 — 4명 중 1명 가까이가 시험을 끝내지 못했습니다
71명이 배정됐는데 12주를 마친 사람은 55명(77%)이었습니다. 16명(22.5%)이 중도 이탈했습니다.
| 완료 | 간독성으로 중단 | |
|---|---|---|
| 가짜약 | 15명 (88%) | — |
| 30mg 1일 1회 | 16명 (89%) | 0명 (0%) |
| 30mg 1일 2회 | 12명 (67%) | 4명 (22.2%) |
| 60mg 1일 1회 | 12명 (67%) | 3명 (17%) |
많이 쓴 두 군에서 3분의 1이 12주를 못 채웠습니다. 간 때문에 중단한 사람이 7명이었고, 그중 4명은 기존 폐섬유증 약(닌테다닙)을 함께 먹고 있었습니다.
흔한 이상반응은 저칼륨혈증, 간기능 이상, 설사, ALT 상승이었습니다.
넷 — 저자들이 직접 적은 한계
논문 끝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이 연구의 한계는 각 군의 적은 인원, 참가자의 지리적·인구학적 동질성(전원 유사한 인종의 중국 거주자), 그리고 짧은 추적 기간이며, 이는 장기 안전성과 유효성 평가를 제한한다"
그리고 하나 더. 이 시험의 스폰서는 약을 만든 회사(인실리코 메디슨)입니다. 저자 11명이 그 회사 소속이고, 시험 설계·자료 수집·분석·해석에 관여했다고 논문에 명시돼 있습니다. 초록에는 없고 맨 뒤에 있습니다.
반대쪽 이야기도 있습니다
AI로 빨리 만들었는데 중간에 사라진 약도 있습니다.
DSP-1181은 강박장애 약이었습니다. 보도된 바로는 통상 5년 걸리는 과정을 12개월로 줄였고, 보통 2,500개쯤 보는 후보 물질을 350개만 보고 찾아냈습니다. 그런데 1상에서 안전성에 문제가 없었는데도 2상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2022년에 개발이 중단됐습니다.
2025년에 나온 비판적 종설 한 편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임상 개발 단계를 통과하는 비율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발굴된 화합물과 여전히 비슷하다"
"많은 「성공」이 후향적이고, 사전에 예측해서 검증한 사례는 더 드물다"
이 종설은 외부 연구비를 받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다만 저자가 규제기관 자문이면서 의약품 개발자이기도 하다는 점도 함께 적혀 있습니다.
정리하면
| 확인된 것 | |
|---|---|
| AI가 설계한 신약의 시판 승인 | 2026년 8월 현재 없음 |
| 가장 앞선 약 | 렌토세르팁 — 3상 시작(2026년 7월), 320명·52주 예정 |
| 줄어든 것 | 발굴 시간 (표적 발굴 시작 → 후보 지명 18개월) |
| 아직 안 줄어든 것 | 임상 통과율 — 전통 방식과 비슷하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보고 |
| 승인된 것 | AI가 쓰임새를 찾은 기존 약(바리시티닙) |
바꿔 말하면 AI가 확실히 바꾼 구간은 「후보를 찾는 앞단」이고, 「사람에게서 효과를 증명하는 뒷단」은 아직 그대로라는 것이 지금까지 나온 데이터입니다.
그리고 뒷단이 원래 약 개발에서 돈과 시간이 가장 많이 드는 구간입니다.
아직 아무도 모르는 것
- 렌토세르팁이 3상에서도 같은 결과를 낼지 — 320명·52주 시험은 이제 막 시작됐습니다
- 2상의 간독성이 더 큰 규모에서 어떻게 나올지
- 중국 거주자만 참여한 결과가 다른 인종에서도 같을지
- AI가 임상 통과율까지 올릴 수 있을지, 아니면 앞단만 빨라지는 것으로 남을지
AI가 약을 만들었느냐 — 표적을 찾고 물질을 그리는 일까지는 했습니다. 그것이 사람에게 듣는 약이 되는지는 지금 3상에서 확인하는 중이고,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시나요. AI가 앞단을 줄인 것만으로도 판이 바뀐 것인지, 아니면 뒷단을 통과해야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인지 — 댓글로 나눠주시면 다음 글에 참고하겠습니다.
영상으로 정리했습니다
이 글의 내용과, 다음 글에서 다룬 「임상시험을 앞당기려는 시도들」을 한 편으로 묶었습니다.
다음 글 — 신약이 10년 걸리는 진짜 이유, 줄일 방법은 없을까
AI가 앞단을 18개월로 줄였는데 왜 10년은 그대로인지, 그 뒷단을 줄이려는 시도 세 가지를 원문으로 확인했습니다.
참고한 자료
- Xu Z 등. Nature Medicine. 2025;31(8):2602-2610. doi:10.1038/s41591-025-03743-2 (PMID 40461817) — 렌토세르팁 2a상, 71명·12주. 스폰서: Insilico Medicine. 전문 확인
- 렌토세르팁 3상 — NCT07687459 / CTR20262475, 320명·52주·중국 47개 기관, 2026년 7월 7일 개시 발표. 회사 발표 및 보도 확인
- Niazi SK. Pharmaceuticals (Basel). 2025 — AI 저분자 신약개발 비판적 종설. 외부 연구비 없음. 전문 확인
- 자소시티닙 3상 결과 — Takeda 발표(2026). 회사는 허가 신청을 시작하겠다고 밝혔으나 2026년 8월 현재 제출 완료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회사가 밝힌 예상 출시 시점은 2027년 상반기. 보도자료 확인
- DSP-1181 개발 중단(2022) — 보도 및 데이터베이스 확인. 12개월·350개 수치는 회사 발표 기준이며 논문 본문으로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 렌토세르팁 논문에서 「합성한 화합물 80개 미만」이라는 수치가 여러 기사에 인용되지만, 논문 본문에서는 확인되지 않아 이 글에서는 쓰지 않았습니다.
이 글은 의학적 조언이 아닙니다. 약물 관련 결정은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하세요.
들어보긴 했는데, 진짜일까.
논문으로 확인하고 말합니다. — 진짜 그런가
들어보긴 했는데, 진짜일까.
논문으로 확인하고 말합니다. — 진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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