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이 10년 걸리는 진짜 이유, 줄일 방법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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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하나가 세상에 나오려면 보통 10년이 넘게 걸립니다.

지난 글에서 AI가 만든 약이 어디까지 왔는지 확인했습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 AI는 「표적과 후보 물질을 찾는 앞단」을 18개월로 줄였습니다. 예전 같으면 몇 년이 걸리던 일입니다
  • 그런데 AI가 설계해서 시판 승인까지 간 신약은 2026년 8월 현재 하나도 없습니다. 가장 앞선 약이 지난달 3상을 시작했습니다
  • 임상 단계를 통과하는 비율도 전통적인 방식으로 찾은 약과 비슷하다는 것이 지금까지 나온 보고였습니다

앞단은 확실히 빨라졌는데, 전체 시간은 그대로인 셈입니다.

이유는 시간을 잡아먹는 구간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임상시험입니다.


10년이 어디에 쓰이는가

약이 나오는 길은 대략 이렇게 생겼습니다.

단계하는 일
① 후보 발굴표적을 정하고 물질을 찾는다 ← AI가 18개월로 줄인 구간
② 전임상세포와 동물로 독성을 확인한다
③ 임상시험사람에게 1상 → 2상 → 3상
④ 허가 심사규제기관이 검토한다

이 중에서 ③이 압도적으로 깁니다.

지난 글의 그 약(렌토세르팁)으로 보면 감이 옵니다. 표적을 찾기 시작해서 0상·1상을 마치기까지가 30개월 미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한 2상은 12주짜리로 71명, 지금 시작한 3상은 320명을 52주 동안 봅니다. 이 3상 하나가 끝나야 허가 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모으고, 나누고, 1년을 지켜보고, 결과를 분석하고 — 그러고도 실패하면 처음부터 다시입니다. 앞에서 아무리 빨리 후보를 찾아와도 이 구간이 그대로면 10년은 줄지 않습니다.

그러면 임상시험을 빠르게 할 방법은 없는 걸까요.

그래서 확인해봤습니다. 실제로 시도되는 것이 있었고, 생각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첫 번째 — 가짜약 그룹을 «데이터»로 대신한다

임상시험이 오래 걸리는 큰 이유 하나는 비교군입니다.

약이 듣는지 알려면 약을 받은 사람과 안 받은 사람을 비교해야 합니다. 그래서 임상시험은 참가자를 두 그룹으로 나눕니다.

  • 새 약을 받는 그룹
  • 가짜약(또는 기존 치료)을 받는 그룹 — 이쪽을 대조군이라고 합니다

가짜약 그룹이 왜 필요한지는 분명합니다. 사람은 약을 안 먹어도 낫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감기가 저절로 낫듯이요. 가짜약을 먹은 사람들이 30% 좋아졌는데 진짜 약을 먹은 사람들도 32% 좋아졌다면, 그 약은 사실상 한 일이 없는 셈입니다.

이 비교가 없으면 약 덕분에 나은 것인지, 그냥 시간이 지나서 나은 것인지 구분할 방법이 없습니다. 임상시험이 두 그룹을 두는 이유가 이것이고, 그래서 아무리 급해도 이 부분은 함부로 없애지 못합니다.

그러면 말기 환자에게도 가짜약을 준다는 말인가

여기서 대부분 이 질문을 하십니다. 저도 했습니다.

답은 「아니오」에 가깝습니다. 중증 환자 시험에서 대조군은 아무것도 못 받는 것이 아닙니다. 보통 이런 구조입니다.

받는 것
시험군지금의 표준치료 + 새 약
대조군지금의 표준치료 + 가짜약

기존에 쓰던 치료는 양쪽 다 받습니다. 그 위에 새 약을 얹느냐 가짜약을 얹느냐만 다릅니다. 대조군에 배정돼도 지금 받을 수 있는 최선의 치료는 그대로 받는 것입니다.

이건 관행이 아니라 명문화된 원칙입니다. 세계의사회 헬싱키 선언 33항은 새 치료를 「최선의 입증된 치료」와 비교하도록 하고 있고, 위약을 쓸 수 있는 경우를 이렇게 제한합니다.

  • 입증된 치료가 아예 없을 때
  • 또는 과학적으로 타당한 방법론적 이유가 있을 때

그리고 두 경우 모두 위약을 받는 환자가 「중대하거나 되돌릴 수 없는 해」를 추가로 입어서는 안 된다고 못 박고 있습니다.

문제는 정말로 줄 것이 없는 병입니다. 희귀질환이나 표준치료가 없는 상태에서는 대조군에게 얹어줄 「기존 치료」 자체가 없습니다. 그때는 위약 대조 자체가 걸립니다.

외부 대조군은 바로 그 자리에서 나온 방법입니다.

임상시험이 두 그룹으로 나뉘는 이유와, 대조군도 표준치료를 받는다는 사실
위쪽은 가짜약 그룹이 왜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가상의 예시입니다. 가짜약 그룹이 30% 좋아졌는데 진짜 약이 32%라면, 그 차이는 약이 한 일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아래쪽은 흔한 오해를 정리한 것입니다 — 대조군에 배정돼도 기존 표준치료는 그대로 받습니다. 가짜약은 그 위에 얹는 것이지, 치료를 빼는 것이 아닙니다(헬싱키 선언 33항).

문제는 참가자를 두 배로 모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시간이 더 걸립니다. 게다가 말기 환자에게 "당신은 가짜약을 받게 됩니다"라고 말해야 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외부 대조군」입니다. 이름이 어렵지만 뜻은 간단합니다.

비교할 그룹을 시험 안에서 새로 모으지 않고, 바깥에서 데려오는 것입니다. 과거에 했던 다른 시험의 기록이나, 병원 진료 데이터에서 비슷한 상태였던 환자들을 찾아 그 경과와 비교합니다. 새로 뽑는 것이 아니라 이미 치료를 받고 기록이 남아 있는 사람들입니다.

보통의 임상시험외부 대조군을 쓸 때
약 받는 그룹새로 모집새로 모집
비교 그룹같이 새로 모집과거 기록·진료 데이터에서 찾음
모아야 할 사람두 배절반이면 된다

이러면 시험에 참여한 사람은 전원 약을 받게 됩니다. 모집이 절반으로 줄어드니 빨라지고, 가짜약을 주는 문제도 없어집니다.

실제로 쓰이고 있는지 확인해봤습니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 동안, 비교군을 따로 두지 않은 시험(단일군 시험)을 핵심 근거로 승인된 약이 이만큼 있었습니다.

2019~2022년FDA(미국)EMA(유럽)
단일군 시험을 핵심 근거로 삼은 승인20건17건
그중 단일군 시험이 유일한 유효성 근거였던 경우12건 (60%)10건 (59%)
그중 외부 대조군을 함께 쓴 경우45% (약 9건)47% (약 8건)

정리하면 「비교군 없이 승인된 약 20건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바깥에서 데려온 비교 자료를 함께 냈다」는 뜻입니다. 전체 신약 승인의 절반이 그렇다는 뜻은 아닙니다 — 애초에 이런 방식으로 승인되는 약 자체가 드뭅니다.

이미 쓰이고는 있되, 아무 때나 받아주지는 않습니다.

  • 희귀질환이거나 유전자치료라 가짜약 그룹을 모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때 (FDA 90%)
  • 평가 지표가 주관적이지 않고 객관적일 때 (90%)
  • 그 병이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는 것이 이미 알려져 있을 때 (90%)
  • 중증인데 쓸 수 있는 치료가 없을 때 (80%)

세 번째 조건을 보시면 앞의 이야기와 이어집니다. 저절로 낫는 병에는 이 방법을 쓸 수 없습니다. 자연히 좋아진 것과 약 덕분에 좋아진 것을 구분할 수 없으니까요. 「가만히 두면 나빠지기만 하는 병」이라는 것이 이미 알려져 있어야 비교가 성립합니다.

나머지 조건도 결국 같은 이야기입니다. FDA 심사자가 남긴 말이 이유를 설명합니다 — 생명이 걸린 병에서 "동시에 가짜약 대조군을 두는 것은 윤리적이지 않다".

즉 이건 가짜약 그룹을 없애는 방법이 아닙니다. 말기암·희귀질환처럼 가짜약을 줄 수 없는 상황에서만 허용되는 예외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같은 자료에 「퇴짜 맞은 이유」도 정리돼 있었습니다.

규제기관이 지적한 내용FDA 신청 중 비율
데려온 환자들이 시험과 «같은 시기»가 아니다45%
두 그룹의 출발선(기저 특성)이 안 맞는다30%
평가 지표가 주관적인데 신뢰도 검증이 없다30%
비교군의 결과 판정에 편향 위험이 있다20%

절반 가까이가 "시기가 안 맞는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당연한 지적입니다. 10년 전 환자와 오늘 환자는 받는 치료도, 진단 방법도, 관리 수준도 다릅니다. 그 사이에 좋아진 것들이 새 약의 효과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비교 대상이 같은 출발선에 서 있지 않은 것이죠.

모집을 절반으로 줄여 시간을 벌었지만, 그만큼 「공정한 비교냐」는 부담을 새로 지게 된 셈입니다.

외부 대조군의 구조 — 비교 그룹을 새로 모집하지 않고 과거 기록에서 찾는다
왼쪽이 보통의 임상시험, 오른쪽이 외부 대조군을 쓸 때입니다. 차이는 비교 그룹을 새로 모집하느냐, 이미 기록이 남아 있는 과거 환자에서 찾느냐입니다. 모아야 할 사람이 절반으로 줄지만, 아래 붉은 글씨처럼 「데려온 환자가 시험과 같은 시기가 아니다」라는 지적을 신청 건의 45%가 받았습니다. 여기서 45%는 전체 신약 승인이 아니라 이 방식을 쓴 신청 건 중의 비율입니다.

참고로 이 분석은 제약회사(다케다)의 연구비로 수행됐고, 저자 두 명이 그 회사 직원이며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고 논문에 적혀 있습니다.


두 번째 — 참가자를 AI가 찾는다

임상시험이 늦어지는 가장 흔한 이유는 사실 단순합니다. 사람이 안 모여서입니다.

참가자를 찾는 일이 왜 오래 걸리나

임상시험은 아무나 받지 않습니다. 조건이 촘촘하게 정해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심부전 시험이라면 「심부전 진단을 받았고 · 심장 기능 수치가 특정 범위 안에 있고 · 지금 먹는 약이 어떤 조건이고 · 다른 중대한 질환은 없고 · 최근에 어떤 시술을 받지 않았고…」 하는 식으로 기준이 열 개가 넘게 붙습니다.

문제는 이 조건들이 검사 수치만으로는 판단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상당수는 의사가 진료기록에 문장으로 써놓은 내용 안에 있습니다. "숨이 차다고 호소함", "지난달 시술 예정이었으나 연기됨" 같은 것들이죠.

그래서 사람이 환자 한 명당 기록을 여러 장 읽어 내려가면서 조건에 맞는지 하나씩 확인해야 합니다. 병원 한 곳에서 이 일을 하는 연구원은 몇 명뿐인데, 후보 환자는 수천 명입니다.

그래서 AI에게 읽혀봤습니다

2025년 JAMA에 실린 시험이 그것입니다. 심부전 임상시험 참가자를 찾는 일을 두 방식으로 나눠서 같은 조건에서 정면 비교했습니다.

  • 환자 4,476명을 무작위로 절반씩 배정
  • 한쪽은 연구원이 기록을 읽고 판정
  • 다른 쪽은 AI가 기록을 읽고 판정 (판정 결과는 사람이 확인)

기사 제목은 이렇게 났습니다. "AI가 임상시험 등록을 두 배로". 결과 숫자만 보면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논문에 실린 중간 과정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배정에서 등록까지 어떻게 줄어들었는지 따라가 보겠습니다.

단계AI가 읽은 쪽사람이 읽은 쪽
① 배정된 환자2,242명2,234명
② 기록을 끝까지 다 읽은 사람2,205명1,347명
③ 조건에 맞는다고 판정된 사람458명284명
③의 비율 (②에 대한)20.8%21.1%
④ 실제로 시험에 등록35명19명

②를 보십시오. 사람이 읽은 쪽은 배정된 2,234명 중 1,347명까지밖에 못 읽고 기간이 끝났습니다. 887명은 아예 펼쳐보지도 못한 것입니다. AI 쪽에서 못 읽은 사람은 37명이었습니다.

③의 비율을 보십시오. 읽은 사람 중에서 "조건에 맞는다"고 골라낸 비율은 20.8% 대 21.1%로 사실상 같았습니다(통계적으로 차이 없음, p=0.86).

정리하면 이렇게 됩니다.

고르는 눈은 사람과 AI가 같았습니다. 정확도로는 우열이 없었습니다. 갈린 것은 얼마나 읽어냈느냐였습니다. 사람은 절반쯤에서 시간이 다 됐고, AI는 15일 만에 거의 다 읽었습니다(사람은 50일이 걸렸습니다).

여기서 "결국 물량이었네"라고 넘길 일이 아닙니다.

바둑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사람과 인공지능의 차이가 큰 이유 중 하나는 제한시간 안에 읽어낼 수 있는 수의 양입니다. 시간이 무한하다면 격차는 훨씬 줄어들겠지만, 실제 대국에는 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시계가 있는 판에서는 「빨리 많이 읽는 것」이 그대로 실력이 됩니다.

임상시험도 시계가 있는 판입니다. 시험에는 모집 기간이 있고, 그 안에 사람을 못 채우면 시험 자체가 늦어지거나 접힙니다.

못 읽은 887명 안에는 조건에 맞는 환자가 분명히 있었을 텐데, 그들은 시험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지나갔습니다. 시험 쪽에서는 참가자를 놓친 것이고, 환자 쪽에서는 새 치료를 시도해볼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사람은 아무리 유능해도 하루에 읽을 수 있는 기록의 양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 한계를 걷어낸 것이 이 연구가 보여준 것이고, 그래서 등록이 두 배가 됐습니다.

이 대목에서는 AI가 임상시험 시간을 실제로 당기고 있습니다. 판단을 대신한 것이 아니라, 시계가 도는 동안 사람이 다 못 하던 일을 해낸 것입니다.

그리고 이건 임상시험이 늦어진 이유가 어디 있었는지도 같이 보여줍니다 — 볼 눈이 없어서가 아니라, 볼 시간이 없어서였습니다.

AI와 사람의 임상시험 참가자 선별 비교 — 등록 수는 두 배지만 적격 판정률은 같았다
배정에서 등록까지 어떻게 줄어드는지 따라가 보면 어디서 갈렸는지 보입니다. ②줄에서 사람이 읽은 쪽은 1,347명에서 멈췄습니다 — 887명은 기록을 펼쳐보지도 못했습니다. ③의 비율(20.8% 대 21.1%)은 읽어본 사람 중 조건에 맞는다고 판정된 비율인데, 여기서는 사람과 AI가 사실상 같았습니다. 즉 고르는 정확도는 같았고, 갈린 것은 얼마나 읽어냈는가였습니다.

저자들이 적은 한계도 분명합니다 — "단일 기관이고, 사례가 심부전 임상시험 하나뿐"이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 — 애초에 실패할 약을 임상에 넣지 않는다

앞의 두 가지가 임상시험 자체를 빠르게 하는 방법이라면, 세 번째는 방향이 다릅니다.

임상시험 기간을 줄이는 게 아니라, 「헛되이 하는 임상시험」을 없애자는 접근입니다. 실패할 약이 3상까지 갔다가 엎어지면 그 몇 년이 통째로 날아가니까요.

지난 글에서 본 숫자가 딱 그 경우였습니다. AI 설계 신약(렌토세르팁) 2상에서 많이 쓴 두 군의 참가자 중 17~22%가 「간 때문에」 시험을 중단했습니다. 사람에게 넣고 나서야 알게 된 것입니다.

이걸 미리 걸러내라고 있는 단계가 동물실험인데, 그쪽을 확인해보다가 예상 못 한 문장을 만났습니다.

FDA가 자기 페이지에 적어놓은 문장

"동물에서 안전했던 약의 90% 이상이 사람에게서 실패한다"

비판하는 쪽이 쓴 게 아니라 규제 당국이 자기 정책을 설명하면서 쓴 문장입니다. 바로 뒤에 이런 말도 붙어 있습니다.

"아스피린 같은 일부 인체 안전 의약품은 오히려 동물시험을 통과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100년 넘게 문제없이 쓰인 약이 지금 기준으로는 걸러졌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걸러야 할 것은 못 거르고, 걸러선 안 될 것은 거를 수 있다 — 규제기관이 스스로 그렇게 적어둔 상태입니다.

그래서 FDA는 2025년 4월 동물실험을 단계적으로 줄이겠다는 로드맵을 냈고, 1년 뒤인 2026년 4월 「1년차 목표를 달성했다」는 후속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손대는 순서도 정해져 있습니다. 단클론항체부터입니다 — FDA 표현으로 "동물모델이 특히 신뢰할 수 없다고 밝혀진" 분야죠. 여기서 시작해 다른 생물학적 의약품, 그리고 새로운 화학물질로 넓혀갈 계획입니다.

동물을 대신할 수단으로 지목된 것은 세 가지입니다. AI·컴퓨터 모델, 실제 진료에서 쌓인 데이터, 그리고 하나가 더 있습니다.

손톱만 한 칩 위에서 사람 세포를 키운다

세 번째 수단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투명한 플라스틱 조각 안에 아주 가는 통로를 새기고, 그 통로에 사람의 세포를 붙여 키웁니다. 그리고 통로로 액체를 계속 흘려보냅니다. 그러면 세포가 몸속에서 혈액을 받을 때와 비슷한 상태에 놓입니다. 여기에 약을 흘려보내고 세포가 어떻게 되는지 보는 것입니다.

이걸 「장기 칩」(Organ on a chip) 이라고 부릅니다. 간을 흉내 내면 간 칩, 폐를 흉내 내면 폐 칩입니다.

배양접시에 세포를 깔아놓고 약을 떨어뜨리는 기존 방식과 다른 점은 「흐름」입니다. 실제 장기의 세포는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피를 받는데, 그 조건을 만들어준 것입니다.

장기 칩의 구조 — 위 통로에 사람 세포, 아래 통로에 액체가 흐른다
위쪽 통로에 사람 세포를 붙여 키우고, 아래쪽 통로로 액체를 흘려보냅니다. 두 통로 사이는 얇은 막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배양접시와 다른 점은 「흐름」입니다 — 몸속 세포가 늘 피를 받는 상태를 만들어준 것입니다. 간을 흉내 내면 간 칩, 폐를 흉내 내면 폐 칩이 됩니다. 구조를 이해하기 위한 개념도이며 실제 칩의 형태와는 다릅니다.

그래서 칩은 얼마나 잘 맞히나

장기 칩 중에서 가장 많이 검증된 것이 간 칩입니다. 약 때문에 생기는 간 손상이 신약이 중간에 엎어지는 대표적인 이유라, 여기에 가장 공을 들였습니다.

2022년에 나온 시험 규모가 이렇습니다.

항목내용
870개
약물27개 (간독성 약과 안 그런 약을 짝지어서)
방식이중맹검 — 약을 넣는 팀과 분석하는 팀을 나눠 무슨 약인지 모르게
민감도87% (간독성 약을 잡아낸 비율)
특이도100% (멀쩡한 약을 독성이라 잘못 부른 경우 없음)

같은 27개 약을 3D 세포 덩어리(스페로이드)로 시험했을 때는 민감도가 47%였습니다. 칩이 확실히 낫습니다.

그런데 논문 본문에는 기사에 안 나오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 저자들은 "동물실험을 대체한다"고 쓰지 않았습니다. 논문 그림에서 칩이 놓인 자리는 동물시험을 없앤 자리가 아니라 동물시험 «앞»이었습니다. 후보를 미리 걸러 "초기 동물 독성시험에 들어가는 수를 줄이는" 용도입니다
  • 못 잡은 약이 넷 있습니다 — 질류톤, 레보플록사신, 스타부딘, 타크린. 87%의 나머지 13%가 이것입니다
  • 칩 재료(PDMS)가 일부 약물 분자를 흡착해버린다고 저자들이 직접 적었습니다. 다른 재질을 개발 중이라고 했습니다
  • 요즘 신약의 절반 이상이 항체 같은 큰 분자인데 그쪽 성능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도 적었습니다
  • 저자 상당수가 이 칩을 만드는 회사(Emulate) 소속이며 지분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회사 창업자도 공저자입니다

논문이 틀렸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중맹검으로 설계했고 숫자도 공개했습니다. 다만 읽는 사람은 알고 읽어야 합니다.

칩이 동물을 대신할 수 있는지 확인해보려 했는데, 확인된 것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아직 거리가 있었습니다. 칩은 잘 맞히지만, 그 잘 맞히는 칩을 만든 사람들조차 「이걸로 동물시험을 없애자」고는 말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세 가지를 나란히 놓으면

흔히 알려진 것원문에 적힌 것
외부 대조군가짜약 그룹이 필요 없어졌다쓰이는 경우 자체가 드물고, 쓴 신청의 45%가 "시기가 안 맞는다"는 지적을 받았다
AI 모집AI가 사람보다 잘 고른다정확도는 똑같았다. 대신 사람이 못 읽은 887명을 읽어냈다
간 칩동물실험을 대체한다동물시험 앞에 하나 더 붙인다 (저자들이 직접 그렇게 배치)
세 가지 시도에서 기사 제목과 논문 본문이 갈리는 지점
각 줄의 위가 흔히 알려진 표현, 아래가 원문에 적힌 내용입니다. 기사 쪽은 셋을 다 「대체」로 묶는데, 논문 쪽은 「보완」·「조건부」·「처리량」으로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셋을 똑같이 볼 수는 없습니다. 방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판단」을 대신하겠다는 쪽 — 간 칩과 외부 대조군이 여기 해당합니다 — 은 아직 대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칩은 동물시험 앞에 하나 더 붙었고, 외부 대조군은 조건이 맞을 때만 허용되는 예외입니다.

사람의 「시간」을 대신하는 쪽 — AI 참가자 선별이 여기 해당합니다 — 은 이미 시간을 당기고 있습니다. 판단을 바꾼 것이 아니라, 정해진 기간 안에 처리하는 양을 바꿨습니다.

세 편의 논문을 열어보기 전에는 저도 "이제 곧 다 바뀌겠구나" 쪽이었습니다. 확인해보니 이상과 현실 사이에 거리가 있었지만, 그 거리는 영역마다 달랐습니다.

정리하면 이렇게 됩니다. 판단을 대신하는 일은 아직 멀었고, 시간을 대신하는 일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그래서 10년이라는 숫자는 아직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놓치던 887명은 이미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여기부터는 확인된 것이 아닙니다

위까지가 논문과 FDA 문서에 적혀 있는 내용입니다. 아래는 글쓴이 생각입니다.

칩이 동물을 대신하지 못하는 이유를 읽다 보면 한 가지로 모입니다. 지금의 칩은 «진짜 장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포 몇 종류를 얇은 통로에 흘려보내는 구조로 간 하나가 하는 일을 다 흉내 낼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줄기세포로 장기를 배양하는 쪽은 어떨까 하고 잠시 생각해 봤습니다. 사람 세포로 만든 조직이 더 정교해지고 실제 장기에 가까워진다면, 결국 그것이 칩이 하려던 일을 대신하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환자 본인의 세포로 만든 조직에서 먼저 약을 시험해볼 수 있다면, 지금은 사람에게 직접 넣어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을 그 전에 알 수 있게 될지도 모르고요.

다만 이건 제 짐작이고, 확인된 것이 아닙니다. 그 방향이 어디까지 왔는지는 아직 제가 논문으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정리하면

  • 신약이 10년 걸리는 것은 임상시험 구간 때문입니다. AI가 줄인 것은 그 앞 구간입니다
  • 외부 대조군은 실제로 쓰이지만 희귀질환처럼 조건이 맞을 때뿐이고, 쓴 신청의 45%가 "시기가 안 맞는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 AI 참가자 모집은 등록을 두 배로 늘렸습니다. 고르는 정확도는 사람과 같았고, 차이는 사람이 끝내 읽지 못한 887명을 읽어냈다는 데 있었습니다 — 임상시험에서는 그것이 곧 성과입니다
  • 간 칩은 민감도 87%·특이도 100%로 3D 세포 덩어리(47%)보다 낫지만, 그 논문의 저자들조차 「대체」라고 쓰지 않았습니다
  • FDA는 "동물에서 안전한 약의 90% 이상이 사람에서 실패한다"고 자기 페이지에 적어놓고 동물실험 축소 로드맵을 진행 중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시나요. 이 정도 속도면 충분하다고 보시는지, 아니면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시험은 원래 이만큼 걸리는 게 맞다고 보시는지 — 댓글로 나눠주시면 다음 글에 참고하겠습니다.


영상으로 정리했습니다

이 글과 지난 글을 한 편으로 묶었습니다. 논문에서 확인한 숫자들을 화면으로 같이 보시면 이해가 빠릅니다.


참고한 자료

  • Subramaniam D 등. Therapeutic Innovation & Regulatory Science. 2024;58(6):1214-1232. doi:10.1007/s43441-024-00693-8 — 단일군 시험·외부 대조군의 규제 수용. 연구비 다케다, 저자 2명이 다케다 직원·주주. 전문 확인
  • Unlu O 등. JAMA. 2025;333(12):1084-1087. doi:10.1001/jama.2024.28047 (PMID 39960745) — AI 대 수기 사전선별 무작위 임상시험, 4,476명. 전문 확인
  • Ewart L 등. Communications Medicine. 2022;2(1):154. doi:10.1038/s43856-022-00209-1 (PMID 36473994) — 간 칩 870개·약물 27개 이중맹검. 저자 다수가 Emulate 소속·지분 보유. 전문 확인
  • 미국 FDA. New Approach Methodologies (NAMs) 공식 페이지 (2026년 7월 28일 기준). 원문 확인
  • 세계의사회. 헬싱키 선언 33항 — 위약 사용 조건(최선의 입증된 치료와 비교, 입증된 치료가 없을 때 등의 예외, 중대·비가역적 해 금지). 조항 원문 확인
  • Xu Z 등. Nature Medicine. 2025;31(8):2602-2610 (PMID 40461817) — 렌토세르팁 2a상. 전문 확인 (지난 글에서 자세히 다뤘습니다)
  • 선행 연구 NEJM AI 2024 (doi:10.1056/AIoa2400181) — AI 선별 정확도 97.9~100% 대 연구원 91.7~100%. 초록·보도 수준까지만 확인했습니다

※ "임상시험의 70~80%가 모집 일정을 못 지킨다", "하루 지연에 80만 달러가 든다" 같은 수치가 여러 기사에 인용되지만, 1차 출처를 확인하지 못해 이 글에서는 쓰지 않았습니다.


이 글은 의학적 조언이 아닙니다. 약물 관련 결정은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하세요.

들어보긴 했는데, 진짜일까.
논문으로 확인하고 말합니다. — 진짜 그런가

들어보긴 했는데, 진짜일까.
논문으로 확인하고 말합니다. — 진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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