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레코드에 새긴 인류의 소리, 그 이유
골든레코드 제작의 물리적 사양과 발사
시작하기 전에 잠깐. 지금 이 순간에도, 태양계 밖 어둠 속을 떠도는 금빛 원반 하나가 있다.
그 원반에는 인류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이야기는 1977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보이저 이호가 먼저였다.
1977년 팔월 20일, 케이프 커내버럴에서 하늘로 떠났다.
그리고 보름 남짓 뒤인 구월 오일, 보이저 일호가 뒤따랐다.
번호와 순서가 뒤바뀐 이 발사에는 이유가 있었다.
일호가 더 빠른 궤도로 목성과 토성에 먼저 닿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두 탐사선은 각각 하나의 원반을 품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골든레코드라 불렀다.
레코드는 구리로 만든 원반에 금을 입힌 것이다.
지름은 30센티미터, 십이인치짜리 아날로그 축음기 디스크다.
우리가 알던 그 검은 음반과 같은 방식이다.
다만 회전 속도가 다르다.
분당 열여섯과 삼분의 이 회전.
느리게 돌수록 더 많은 소리를 담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것을 누가, 어떻게 재생하느냐였다.
우주 어딘가에서 이 원반을 주울 존재는 축음기를 알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각 탐사선에는 원반과 함께 도구가 실렸다.
바늘과 카트리지, 그리고 알루미늄으로 만든 덮개다.
덮개 표면에는 재생하는 방법이 그림으로 새겨졌다.
바늘을 어디에 얹고, 얼마나 빠르게 돌려야 하는지를 선과 도형으로 그렸다.
말이 통하지 않는 존재에게 건네는 설명서였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물음이 남는다.
'빠르게'라는 것을, 시간의 단위를 모르는 존재에게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과학자들은 우주 어디에서나 변하지 않는 것을 기준으로 삼았다.
바로 수소 원자다.
수소는 우주에서 가장 흔한 원소다.
그 수소 원자 안에서 일어나는 아주 미세한 변화, 초미세 전이가 있다.
이 전이는 늘 같은 진동수를 낸다.
1420 MHz, 주기로는 약 0.7 나노초다.
이 찰나의 시간을 하나의 자로 삼았다.
덮개에 새겨진 모든 시간과 거리는 이 수소의 박동을 단위로 읽도록 되어 있다.
우주 어디서든 통하는 공통의 언어인 셈이다.
시간의 기준을 정했다면, 다음은 위치다.
이 원반을 만든 이들은 어디에 살고 있는가.
과학자들은 별 하나가 아니라, 등대 같은 별들을 골랐다.
펄사다.
펄사는 규칙적으로 신호를 뿜어내는 죽은 별이다.
각각의 펄사는 저마다 다른 주기로 깜빡인다.
그 주기는 지문처럼 고유하다.
덮개에는 열네 개의 펄사가 새겨졌다.
각 펄사가 뻗어 나가는 방향과, 깜빡이는 주기를 함께 표시했다.
이 열네 개의 선이 만나는 한 점, 그곳이 바로 태양이다.
이 방식은 앞서 떠난 파이오니어 탐사선의 명판과 같다.
은하 어딘가에서 이 지도를 읽는 존재라면, 우리의 자리를 짚어낼 수 있을 것이다.
남은 물음은 시간이다.
이 원반은 언제 만들어졌는가.
이것을 답하기 위해, 덮개 표면에는 우라늄-238이 전기도금으로 얇게 입혀졌다.
우라늄은 시간이 흐르며 서서히 다른 원소로 붕괴한다.
그 속도는 정해져 있다.
우라늄-238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 반감기는 약 44억 70,000,000년이다.
훗날 이 원반을 발견한 존재가 남은 우라늄의 양을 재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는지 계산할 수 있다.
방사성 붕괴가 새겨 넣은 시계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 원반은 얼마나 오래 견딜 수 있을까.
나사는 추산한다.
부식되지 않는다면, 그 수명은 약 10억년이다.
지구의 어떤 문명도, 어떤 언어도 남기지 못한 시간이다.
금빛 원반은 지금도 침묵 속을 떠간다.
언젠가 누군가의 손에 닿을, 그 한순간을 향해서.
선정 위원회와 세이건의 주도
지구의 소리를 별에게 보낸다는 생각. 그 막연한 꿈을 현실로 옮길 사람들이 필요했다.
그 중심에 한 사람이 있었다.
코넬대학교 천문학자, 칼 세이건. 그가 콘텐츠 선정 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았다.
세이건은 흩어진 재능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무엇을 새길 것인가. 그 거대한 질문 앞에 작은 사람들이 둘러앉았다.
예술감독은 앤 드루얀이었다. 세이건의 당시 연인이자, 훗날 그의 아내가 된 사람이다.
두 사람은 이 작업 속에서 서로를 향한 마음을 확인했다고 전해진다. 별을 향한 편지가, 두 사람 사이에도 편지가 된 셈이다.
음악을 고르는 일에는 특별한 귀가 필요했다. 음악학자 앨런 로맥스가 합류했다.
그는 평생 세계 곳곳의 민속 음악을 채집해 온 사람이다. 사라져 가는 소리들을 붙잡아 온 손이었다.
프로듀서 티모시 페리스도 함께했다. 흩어진 곡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는 일을 맡았다.
그러나 시간은 이들의 편이 아니었다. 이 모든 작업에 주어진 기간은 고작 육주 남짓이었다.
지구의 목소리를 담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 그 짧음 속에서 수많은 선택과 포기가 오갔다.
가장 큰 벽은 저작권이었다. 협상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넣고 싶었던 곡들 가운데 일부가 끝내 목록에서 지워졌다.
그중 하나가 비틀스였다. 위원회는 '히어 컴즈 더 선'을 싣고 싶어 했다.
떠오르는 태양을 노래한 그 곡은, 별들 사이로 떠나는 이 여정에 어울려 보였다.
비틀스 멤버들도 호의적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곡의 권리를 쥔 음반사 이엠아이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그 노래는 골든레코드에 오르지 못했다.
우주로 떠난 소리들 뒤에는, 떠나지 못한 소리들도 있었다. 짧은 시간과 현실의 벽이 남긴, 조용한 그림자였다.
레코드에 담긴 실제 콘텐츠 구성
그렇다면, 그 금빛 원반 안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가장 먼저 흐르는 것은 인사말이다. 쉰다섯개 언어로 녹음된, 지구인의 목소리다. 그 안에는 지금 우리가 쓰는 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수천년 전 사라진 고대 아카드어가 있고, 인류 최초 문명이 남긴 수메르어가 있다. 가장 오래된 말과 가장 새로운 말이, 한 장의 원반 위에서 나란히 숨 쉰다.
목소리 사이에는 두 사람의 메시지가 놓였다. 당시 국제연합 사무총장이었던 쿠르트 발트하임의 인사다. 그리고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의 서면 메시지다. 카터는 이렇게 적었다. 이것은 작고 먼 세계에서 보내는 선물이라고. 우리의 소리와 과학과 이미지와 음악,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담았다고.
그다음, 음악이 시작된다. 스물일곱곡이다. 바흐가 세 곡, 베토벤과 모차르트 마술피리가 있다. 그러나 원반은 격식 있는 선율만 고르지 않았다. 척 베리의 조니 비 굿이 흐른다. 지구에서 처음 우주로 떠난 로큰롤이다. 루이 암스트롱의 트럼펫이 있고, 인도네시아 가믈란의 금속성 울림이 있다. 나바호족의 노래가 있고, 페루 팬파이프의 바람 소리가 있다. 인류 전체가 하나의 앨범에 모인 셈이다.
음악이 잦아들면, 이번엔 지구 그 자체의 소리가 이어진다. 지구의 소리, 사운즈 오브 어스다. 화산이 터지고, 천둥이 울린다. 비가 내리고, 파도가 밀려온다. 새가 지저귀고, 고래가 깊은 바다에서 노래한다. 그리고 사람의 소리가 있다. 심장박동, 웃음소리, 걸음의 발자국. 입맞춤 소리, 아기의 첫 울음. 마지막에는 모스부호가 나지막이 깜빡인다. 말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남긴 흔적이다.
소리만이 아니다. 원반에는 백열여섯장의 이미지가 아날로그 신호로 새겨졌다. 태양계 도표가 있고, 인체 해부도가 있다. 생명 설계도인 디엔에이 구조가 있다. 푸른 지구의 사진과 우리가 먹는 음식, 우리가 지은 건물이 담겼다.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소리로 바꾸어 그림을 감춘 것이다.
그리고 가장 은밀한 데이터가 하나 있다. 앤 드루얀의 뇌파와 심장박동이다. 그녀의 뇌와 심장을, 한시간 동안 녹음해 신호로 변환한 것이다. 그날 그녀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칼 세이건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조용히 명상했다고 전해진다. 한 사람의 마음이 흐르던 순간이, 전기 신호가 되어 별들 사이로 떠났다.
이렇게 원반은 완성되었다. 목소리와 음악, 지구의 숨결과 한 사람의 심장까지. 그것은 지금도 어둠 속을 나아가고 있다.
왜 '소리'와 '데이터'를 함께 새겼는가 — 설계 의도
그 황금빛 원반은 지금도 성간 공간을 미끄러져 간다.
그러나 이 기록을 만든 이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이것이 누군가의 손에 닿을 확률은, 사실상 영에 가깝다.
골든레코드는 실질적인 교신을 위한 장치가 아니었다.
그것은 타임캡슐이자, 상징적인 메시지로 명시되었다.
제작진 스스로도 발견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칼 세이건은 이런 취지로 말했다.
우주 공간에서 이 기록이 발견될 확률은 사실상 영에 가깝다.
그러나 이를 발사한 것은, 지구 생명에 대해 우리 자신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먼 별을 향한 편지처럼 보이지만, 그 편지는 사실 우리를 향해 돌아온다.
이 발상은 갑자기 태어난 것이 아니었다.
앞서 1972년과 73년, 파이오니어 십호와 십일호가 발사되었다.
두 탐사선에는 작은 알루미늄 명판이 실려 있었다.
거기엔 그림만이 새겨져 있었다.
벌거벗은 남녀의 모습, 태양계 안 지구의 위치, 그런 도형들이었다.
골든레코드는 그 명판의 후속이자, 확장판이었다.
그러나 그림 하나만으로는 담을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이미지는 문화와 생물학의 다양성을 온전히 전하지 못한다.
한 장의 도형으로, 어떻게 웃음소리를 그리겠는가.
바람과 파도, 수많은 언어의 억양을 어떻게 선으로 남기겠는가.
그래서 그들은 청각의 정보를 더했다.
음악과 자연의 소리, 그리고 여러 언어의 인사를 함께 새겼다.
보는 메시지에서, 듣는 메시지로 나아간 것이다.
그 소리들 사이에는 고래의 노래도 담겨 있었다.
인간의 언어와 나란히, 바다 깊은 곳의 울음이 실렸다.
그것은 하나의 조용한 암시였다.
이 행성의 지적인 존재가, 인간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암시다.
지구는 여러 목소리로 이루어진 세계라는 고백이었다.
그렇게 원반은, 인류가 스스로에게 건네는 자화상이 되었다.
성적·정치적 검열 논란
소리를 담고, 그림을 새기던 그 손길은 곧 예상치 못한 벽에 부딪혔다.
인류의 몸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칼 세이건 연구팀은 처음, 벌거벗은 남녀의 실사 사진을 실으려 했다.
우리가 어떤 생명체인지, 있는 그대로 우주에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사는 그 사진을 거부했다.
당시 미국 사회의 시선을 의식한 결정이었다.
결국 두 사람의 몸은 단순한 실루엣 선화로 대체됐다.
살아 있는 사진 대신, 윤곽만 남은 그림이 별들 사이로 떠나게 된 것이다.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여성의 몸 안에 작은 태아를 함께 그려 넣으려던 시도도 문제가 됐다.
생명이 태어나는 과정을 보여주려던 그 그림은, 결국 사실적인 묘사가 아닌 도식으로 다듬어졌다.
인류가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일조차, 조심스러운 조율의 대상이 된 셈이다.
검열은 몸에만 머물지 않았다.
특정 종교의 상징이나 정치적 메시지는 처음부터 배제하는 방향으로 조율됐다.
미국 안의 여러 목소리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고려였다.
지구를 대표한다는 이 원반은, 역설적으로 한 나라의 국내 사정 위에서 다듬어졌다.
그런데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이 원반이 떠난 1977년은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이다.
미국과 소련이 서로를 겨누던 시대였다.
그럼에도 골든레코드 안에는 소련의 음악이 담겼고, 러시아어를 비롯한 구소련의 인사말이 함께 실렸다.
지상에서는 갈라섰던 두 진영이, 우주로 보내는 메시지 안에서는 나란히 인류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인 것이다.
외계인이 정말 해독할 수 있는가 — 기술적 회의론
금박을 입힌 그 원반은, 지금도 별들 사이를 조용히 흐르고 있다.
하지만 정말 누군가 그것을 읽을 수 있을까.
레코드 겉면에는 재생 방법이 그림으로 새겨져 있다.
원반을 분당 몇 바퀴 돌려야 하는지, 그 회전수를 별의 진동 주기로 환산해 표시했다.
바늘이 아날로그 홈을 따라 훑으면 소리가 되살아난다는 설명도, 옆면에 그려 두었다.
우리에게는 명료한 도해다.
그러나 여기에 조용한 균열이 있다.
이 그림을 이해하려면, 상대가 우리와 같은 시각을 지녀야 한다.
선을 방향으로 읽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름을 좇는 논리.
이 모든 것이 인간의 관습이다.
빛을 눈으로 보지 않는 존재라면, 시간을 우리와 다르게 세는 지성이라면, 이 도해는 아무 뜻도 없는 무늬일지 모른다.
펄사 지도 역시 흔들린다.
레코드에는 태양의 위치를, 열네 개 펄사까지의 방향과 주기로 표시했다.
펄사는 아주 규칙적인 등대처럼 신호를 뿜는 별이다.
그 정확한 리듬이 좌표의 기준이 된다.
하지만 펄사는 영원히 같은 박자로 뛰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며 아주 조금씩 회전이 느려진다.
수만 년이 지나면, 그 주기는 지금과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때 이 지도를 손에 쥔 존재는, 어긋난 박자로 잘못된 지점을 가리키게 될지도 모른다.
더 근본적인 한계도 있다.
골든레코드는 아날로그 매체다.
홈에 새겨진 물리적 굴곡을, 바늘과 회전으로 되짚어야만 소리가 나온다.
재생 기술 없이는, 그 안의 음악도 목소리도 결코 들리지 않는다.
순수한 숫자로 된 정보가 아니라, 만지고 돌려야 하는 물건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세티 연구자와 언어학자들 사이에서는 오래된 물음이 이어진다.
메시지가 특정 언어와 감각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뜻을 드러낼 수 있는가.
이 언어 독립성의 문제는,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논쟁으로 남아 있다.
우리가 새긴 것은, 어쩌면 답이 아니라 물음이었는지도 모른다.
현재 위치와 물리적 운명
그 소리는 이제, 태양이 다스리던 경계를 넘어섰다.
보이저 일호는 2012년, 태양풍이 멈추는 자리를 지났다.
그 경계를 헬리오포즈라 부른다.
동생인 이호는 육년 뒤, 2018년에 같은 문턱을 넘었다.
두 탐사선은 그렇게, 별과 별 사이 성간 공간으로 들어섰다.
2026년, 지금 이 순간에도 보이저 일호는 멀어지고 있다.
지구에서 240억킬로미터 너머, 빛조차 하루가 걸려서야 겨우 닿는 먼 곳이다.
인류가 만든 그 어떤 물체도, 이토록 멀리 간 적은 없다.
가장 멀리 있는, 우리 자신의 손길이다.
그러나 그 손길에도 끝이 있다.
탐사선을 살아 있게 한 것은 플루토늄이 식으며 내는 온기, 작은 원자력 전지였다.
그 온기는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다.
2025년 무렵, 대부분의 계측기는 하나둘 잠들도록 예정되어 있다.
언젠가 마지막 신호가 끊기면, 보이저는 눈을 감은 채 나아갈 것이다.
기계는 멈춰도, 금빛 원반은 남는다.
먼지도 바람도 없는 성간 공간에서, 그 레코드는 거의 영원에 가깝게 보존된다.
새겨진 소리는 지워지지 않는다.
약 40,000년 뒤, 보이저 일호는 어느 별 곁을 스쳐 지날 것으로 예측된다.
기린자리 방향의 작은 별, 글리제 445다.
그 별로부터 1.6광년, 손이 닿지 않는 거리를 조용히 통과한다.
그때 지구가 어떤 모습일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원반은 여전히, 인간의 목소리를 품은 채 흐르고 있을 것이다.
한 아이의 웃음, 파도 소리, 그리고 여러 말로 건넨 안녕이다.
우리는 그 소리를, 돌아올 수 없는 어둠 속으로 띄워 보냈다.
언젠가 누군가 이 소리를 듣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들어보긴 했는데, 진짜일까.
논문으로 확인하고 말합니다. — 진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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