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마 푼쿠 석재의 비밀, 어떻게 깎였나

안데스 고원에 흩어진 정밀하게 깎인 석재 블록들
해발 4천 미터 가까운 고원에, 직각으로 깎인 돌들이 흩어져 있다.

석재의 물성과 두 종류의 암석 구분

붉은 사암과 짙은 안산암 두 종류 돌의 표면 비교
유적의 돌은 한 종류가 아니다. 물성이 다른 두 암석이 쓰였다.

시작하기 전에 잠깐. 안데스 고원, 해발 4000미터에 흩어진 돌덩이들이 있다.

누군가는 그것을 신들이 남긴 조각이라 불렀다.

볼리비아의 푸마 푼쿠.

이곳의 석재는 무심히 쌓인 하나의 돌더미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서면, 그 돌들이 둘로 나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나는 붉은 사암이다.

다른 하나는 회색 안산암이다.

두 암석은 색이 다르고, 무엇보다 성질이 다르다.

붉은 사암은 이 유적에서 가장 거대한 몸집을 이룬다.

가장 큰 사암 블록은 추정 무게가 약 130톤에 이른다.

길이는 7.8미터로 보고된다.

어른 키의 네 배가 넘는 하나의 돌이, 온전한 덩어리로 누워 있다.

이 거대한 사암들은 대체로 바닥과 벽면, 기단을 이룬다.

크지만, 형태는 비교적 단순하다.

경이는 오히려 다른 돌에 숨어 있다.

정교한 직각의 홈.

에이치자를 닮은 블록.

바늘처럼 정밀하게 뚫린 구멍.

이 섬세한 가공은 대부분 회색 안산암에 집중되어 있다.

왜 하필 안산암이었을까.

이유는 그 돌의 단단함에 있다.

안산암은 모스 경도가 약 육에 이른다.

유리를 긁을 수 있을 만큼 단단한 돌이다.

그런데 이 유적을 만든 이들이 쓸 수 있던 금속은 구리였다.

구리의 경도는 약 삼이다.

경도 삼의 도구로 경도 육의 돌을 직접 깎는 일은 불가능하다.

무른 것으로 단단한 것을 자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안산암 위에는 칼로 그은 듯한 직각의 선이 남아 있다.

수수께끼는 돌의 출신에서 더 깊어진다.

붉은 사암의 채석장은 유적에서 약 십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추정된다.

안산암은 훨씬 멀다.

티티카카 호수 건너편, 코파카바나 반도가 유력한 산지로 꼽힌다.

거리는 최대 90킬로미터에 이른다고 추정된다.

가장 단단한 돌이, 가장 먼 곳에서 왔다.

그들은 왜 굳이 그 먼 돌을 골랐을까.

그리고 무른 도구로, 어떻게 그 돌을 다스렸을까.

그 답을 찾아, 돌 하나하나를 다시 들여다본다.

티와나쿠 문명의 연대와 건조 주체

그 정교한 돌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 답을 찾으려면, 먼저 이 유적이 놓인 자리를 보아야 한다.

푸마 푼쿠는 홀로 서 있는 유적이 아니다.

볼리비아의 하늘 호수, 티티카카 호수 인근.

그 곁에 펼쳐진 거대한 유적 복합체, 티와나쿠의 일부다.

해발 4000미터 가까운 고원 위, 얇은 공기 속에 잠든 돌의 도시.

푸마 푼쿠는 그 도시의 한 조각이다.

그렇다면 이 돌들은 언제 세워졌을까.

과학은 돌 사이에 남은 유기물의 흔적을 읽는다.

방사성탄소 연대측정.

그 결과, 주요 건축 활동은 서기 500년에서 600년경으로 밝혀졌다.

일부 흔적은 서기 3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으로부터 1500년 남짓 전, 이 고원 위에서 돌이 깎이고 있었다.

그러나 한때, 전혀 다른 숫자가 세상을 흔들었다.

이십세기 초, 아르투르 포즈난스키라는 연구자가 있었다.

그는 별의 움직임으로 유적의 나이를 읽으려 했다.

고고천문학이라 불리는 방법이다.

그가 내놓은 답은 기원전 15,000년.

인류가 아직 마지막 빙하기를 지나던 시대였다.

만약 사실이라면, 문명의 역사 자체를 다시 써야 할 숫자였다.

하지만 그의 계산에는 오류가 있었다.

지구 자전축이 아주 느리게 흔들리는 현상, 세차운동.

그 값을 잘못 대입한 것이다.

이 오류가 드러나면서, 15,000년이라는 숫자는 학계에서 조용히 폐기되었다.

남은 것은 다시, 서기 500년경이라는 냉정한 연대다.

그런데 이 돌을 세운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티와나쿠 문명은 문자를 남기지 않았다.

돌을 어떻게 깎았는지, 그 기법을 적은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설계도도, 이름도, 노래도 남지 않았다.

오직 돌만이 그들이 지나간 자리를 증언한다.

훗날, 이 고원을 지배한 잉카 사람들이 있었다.

잉카의 신화 속에서 티와나쿠는 특별한 곳이다.

세계가 처음 창조된 장소, 태초의 땅으로 이야기된다.

그러나 잉카는 이 돌을 세운 이들이 아니다.

티와나쿠 문명이 무너지고, 수백년이 지난 뒤에야 잉카는 나타났다.

잉카에게도 이 돌들은 이미 아득한 옛것이었다.

그들 역시, 이 유적 앞에서 우리와 같은 질문을 품었을 것이다.

누가, 어떻게, 이토록 완벽한 돌을 남겼는가.

H자형 블록과 모듈식 규격화

동일한 H자 형태로 깎인 석재 블록들이 나란히 놓인 모습
같은 규격의 H자 블록이 반복된다 — 모듈식 설계의 흔적이다.

앞선 챕터에서 우리는 안산암이라는 단단한 돌을 만났다.

이제 그 돌이 어떤 모습으로 다듬어졌는지 들여다볼 차례다.

푸마 푼쿠의 블록들을 가까이 살피면, 이상한 규칙성이 눈에 들어온다.

같은 폭의 홈이 반복된다.

같은 크기의 돌기가 되풀이된다.

마치 하나의 설계도를 여러 번 베껴 그린 듯하다.

그래서 일부 연구자들은 이렇게 해석한다.

이 블록들이 표준 규격에 맞춰 깎인 모듈, 즉 조립식 부품이었다는 것이다.

홈과 돌기가 서로 맞물려 하나의 구조로 완성되도록 설계됐다는 이야기다.

가장 상징적인 것이 H자 모양의 블록이다.

알파벳 에이치를 닮은 이 형태가, 유적 곳곳에서 거의 동일한 모습으로 발견된다.

크기도, 홈의 위치도 서로 놀랍도록 닮아 있다.

한두 개가 우연히 비슷한 것이 아니다.

여러 개가 같은 규격을 공유한다.

이 때문에 하나의 형판, 즉 템플릿을 두고 그것을 본떠 여러 개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같은 틀을 반복해 찍어내듯, 대량으로 제작했으리라는 추정이다.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형태에서 끌어낸 해석이며, 확정된 사실은 아니다.

정밀도는 더욱 놀랍다.

표면을 가로지르는 홈은 폭이 거의 일정하다.

홈이 꺾이는 안쪽 모서리는 날카롭게 각이 서 있다.

둥글게 뭉개진 흔적이 아니라, 선명하게 파고든 직각이다.

측정해 보면, 그 오차가 밀리미터 단위에서 관찰된다.

돌 위에 새겨진 선이, 마치 자를 대고 그은 것처럼 곧다.

이 정교함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블록끼리 홈과 돌기로 맞물리는 방식, 이른바 인터로킹 구조에 주목하는 시각이 있다.

부품들이 서로를 붙잡아, 흔들려도 쉽게 어긋나지 않는다.

이곳 안데스는 지진이 잦은 땅이다.

땅이 흔들릴 때, 맞물린 돌들은 힘을 나누어 견딘다.

그래서 이 구조가 일종의 내진 설계로 기능했으리라 보는 것이다.

정확한 규격, 반복되는 형태, 서로 물리는 짜임.

모든 것이 하나의 의도를 향하는 듯하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깊은 침묵이 남는다.

규격을 맞추려면 재고, 비교하고, 표준을 정하는 도구가 있어야 한다.

같은 폭, 같은 각도를 반복하려면 기준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도구가 무엇이었는지, 물증이 없다.

자도, 형판도, 측정 기록도 발견되지 않았다.

밀리미터의 정밀함만이 돌 위에 남아, 사라진 손을 증언한다.

금속 꺾쇠(I-cramp)와 야금술 증거

금속 꺾쇠가 박혀 있던 T자 홈이 남은 석재 표면
홈에는 금속 꺾쇠가 부어졌던 자리가 남아 있다.

돌을 깎아 맞춘 손끝에는, 또 하나의 비밀이 숨어 있다.

푸마 푼쿠의 일부 블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표면에 기이한 홈이 파여 있다.

가운데가 잘록하고 양 끝이 넓은, 나비 모양의 홈이다.

영어로는 아이자 꺾쇠, 그러니까 알파벳 아이를 닮은 형태라 불린다.

이 홈은 장식이 아니다.

두 개의 돌덩이를 나란히 놓고, 그 경계에 걸치도록 홈을 판다.

그리고 그 안에 녹인 금속을 붓는다.

금속이 식어 굳으면, 두 블록은 하나의 꺾쇠로 단단히 묶인다.

지진이 흔드는 땅 위에서도 흩어지지 않도록, 돌과 돌을 잇는 금속의 못이다.

발견된 꺾쇠를 분석하자,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그것은 단순한 구리가 아니었다.

비소를 섞은 구리 합금, 그리고 청동 계열의 금속이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일부 꺾쇠에 남은 흔적이다.

미리 만들어 끼운 것이 아니라, 홈 안에서 직접 녹여 부어 굳힌 자국이 남아 있었다.

돌 위에서, 그 자리에서, 금속이 액체로 흘러들었다는 뜻이다.

이 금속은 어디에서 왔을까.

2007년, 한 연구가 그 답을 찾았다.

꺾쇠의 성분을, 안데스 지역에서 나는 광석과 비교한 것이다.

결과는 일치했다.

멀리서 들여온 것이 아니라, 이 땅의 광석에서 이 땅의 기술로 빚어낸 금속이었다.

티와나쿠는 스스로의 야금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장면을 떠올려 보라.

무거운 화로를 옮길 수는 없다.

대신 그들은 이동식 도가니를 건축 현장으로 가져왔을 가능성이 크다.

돌 곁에 불을 피우고, 도가니 안에서 금속을 녹인다.

그리고 아직 뜨거운 액체를, 파놓은 홈으로 곧장 흘려보낸다.

이것은 상당한 고온을 다루는 능력을 요구한다.

금속을 액체로 녹이려면, 수백도를 넘는 열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그 기술을, 야외의 돌밭에서 구현했다는 이야기다.

이런 방식은 결코 흔하지 않다.

메소아메리카와 안데스를 통틀어, 건축에 금속 꺾쇠를 쓴 사례는 드물다.

돌을 깎는 손과, 금속을 녹이는 손이 만나는 자리.

푸마 푼쿠는 그 두 기술이 겹쳐진, 보기 드문 흔적이다.

가공 기법을 둘러싼 주류 vs 대체 가설

그렇다면 이 돌들은 대체 어떻게 깎였을까.

주류 고고학은 뜻밖에 담담한 답을 내놓는다.

푸마 푼쿠의 단단한 안산암은, 그보다 더 단단한 돌로 깨어졌다는 것이다.

규암 같은 경질의 돌망치를 손에 쥐고, 표면을 조금씩 쪼아 형태를 잡았다고 본다.

그리고 마지막 마감은 물과 모래였다.

젖은 모래를 문질러, 오랜 시간 갈아내며 매끄러운 면을 완성했다는 것이다.

빛나는 도구가 아니라, 손과 시간과 인내가 만든 정밀함이다.

그렇다면 그 정교한 구멍과 홈은 어떠했을까.

고고학자들은 실험으로 답을 찾으려 했다.

뼈나 나무로 만든 드릴 끝에 연마제가 될 모래를 묻힌다.

그것을 돌리고 또 돌려, 안산암에 작은 구멍을 파는 재현이 시도됐다.

혹은 석재 도구로 같은 자리를 반복해 문지르며, 홈을 서서히 마모시켜 냈다.

느리지만, 불가능하지 않은 길이었다.

그러나 이 담담한 설명에 만족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다.

고대 우주비행사설을 주장한 에리히 폰 데니켄과 그 추종자들이다.

그들은 말한다.

이 정밀도는 기계로 절삭한 수준이며, 원시 도구로는 결코 닿을 수 없다고.

그러니 외계의 기술이 개입했으리라는 것이다.

일부는 더 나아가, 레이저나 다이아몬드 공구를 언급하기도 한다.

하지만 학계의 반론은 조용하고 단단하다.

첫째, 그 정밀도는 자주 과장되어 왔다.

둘째, 돌 위에 남은 명백한 손도구의 흔적을 그들은 외면한다.

그리고 만약 레이저나 다이아몬드 공구가 쓰였다면, 그 물리적 잔존물이나 특유의 절삭 마크가 남아야 한다.

그러나 푸마 푼쿠 어디에서도, 그런 흔적은 단 하나도 발견된 바 없다.

돌은 오히려 인간의 손을 증언한다.

다만, 여기서 정직하게 남는 질문이 하나 있다.

이 방대한 양의 정밀한 마감을, 누가, 어떻게 조직해 감당했는가.

그 노동의 규모와 도구 세트의 구체적인 실물 증거는,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

돌은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 손들의 전모는, 아직 우리 앞에 온전히 드러나지 않았다.

유적의 파괴·교란 상태와 연구의 한계

정교하게 깎인 돌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이곳을 처음 찾은 사람은 놀란다.

거대한 블록들이 질서 없이 흩어져 있다.

넘어지고, 뒤집히고, 서로 어긋난 채 멈춰 있다.

정밀하게 맞물리도록 다듬어진 돌들이다.

그러나 그 돌들이 원래 어디에 놓였는지, 어떤 순서로 쌓였는지는 알기 어렵다.

퍼즐 조각은 남았지만, 완성된 그림은 흩어져 버렸다.

무너진 이유는 하나가 아니다.

시간은 이 돌들을 오랫동안 훼손했다.

스페인 식민 시기 이후, 수백년 동안 이곳은 채석장처럼 쓰였다.

정교한 블록들이 건물의 자재로 뜯겨 나갔다.

어떤 돌은 부서져 석회를 굽는 원료가 되었다.

그렇게 상당수가 제자리를 잃었다.

십구세기와 이십세기에는 철도가 놓였다.

그 건설을 위해 유적의 석재가 반출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수천년을 버틴 돌들이, 근대의 선로 아래로 사라진 것이다.

자연도 이 붕괴에 관여했을 수 있다.

일부 지질학자는 이 무질서한 배열을 급격한 재해로 설명한다.

강한 지진이 한순간에 구조물을 흔들어 무너뜨렸을 가능성이다.

혹은 거대한 홍수가 블록들을 밀어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이는 아직 확정된 결론이 아니라, 하나의 가설이다.

그래서 연구는 조심스럽다.

정식 층서 발굴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땅을 층층이 걷어내며 시간의 순서를 읽는 작업이다.

그 층이 온전히 남아 있어야, 무엇을 먼저 쌓았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미 교란된 이곳에서는 그 순서가 흐려졌다.

돌을 다듬던 도구, 그 부스러기가 어디에 버려졌는지도 맥락을 잃었다.

작업의 흔적이 원래 자리에 놓여 있어야, 어떻게 깎였는지 되짚을 수 있다.

그 단서들이 오랜 세월 동안 뒤섞였다.

우리는 완성된 유적이 아니라, 흩어진 파편 앞에 서 있다.

그리고 그 파편들이, 여전히 침묵으로 답을 미루고 있다.

채석과 운반의 물류 문제

고원에서 거대한 석재를 끌고 가는 고대 인부들
채석장은 유적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운반은 그 자체가 문제였다.

정교한 절단면과 규격화된 홈을 지나, 이제 마지막 물음이 남는다.

이 돌들은 어떻게 이곳까지 왔을까.

푸마 푼쿠의 블록 가운데 일부는 수십톤에 이르고, 가장 무거운 것은 130톤에 달한다.

채석장은 가까운 곳도 있었지만, 붉은 사암은 최대 수십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왔다고 여겨진다.

그 경로에는 티티카카 호수를 건너는 구간까지 포함된다.

바퀴도, 무거운 짐을 끄는 큰 가축도 없던 문명이 그 무게를 어떻게 옮겼는가.

이것은 여전히 논쟁거리다.

연구자들은 몇 가지 방법을 짐작한다.

통나무를 땅에 늘어놓고 그 위로 돌을 굴려 옮기는 굴림대.

호수 구간에서는 토토라라 불리는 갈대로 엮은 배가 쓰였으리라는 추정도 있다.

그리고 높은 곳으로 돌을 밀어 올리기 위한 경사로.

다만 이 모두는 가설이며, 확정된 답은 아니다.

더 큰 제약은 땅 그 자체에 있다.

티와나쿠는 해발 약 3850미터 고지대에 있다.

공기는 옅고, 숨은 가빠지며, 작물은 쉬이 자라지 않는다.

그런 곳에서 거대한 돌을 옮기려면 수많은 사람의 손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먹일 식량이 필요했다.

높고 척박한 땅에서 대규모 노동력을 모으고, 그들을 먹여 살리는 일.

그것이야말로 이 유적이 짊어진 가장 무거운 물류였을지도 모른다.

한 가지 단서가 남아 있다.

유적 인근에는 미처 완성되지 못한 돌, 옮겨지다 멈춘 돌들이 흩어져 있다.

그 방치된 돌들은, 채석에서 운반, 가공으로 이어지는 단계적 공정을 짐작하게 하는 흔적이다.

멈춘 자리에 남은 돌은, 끝내지 못한 이야기처럼 그 자리에 놓여 있다.

우리는 그 홈과 각을 재고, 경로를 되짚으며 답을 찾는다.

그러나 돌은 말이 없다.

높은 하늘 아래, 옅은 공기 속에서, 그들은 여전히 침묵으로 답한다.

들어보긴 했는데, 진짜일까.
논문으로 확인하고 말합니다. — 진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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