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성 6각형 폭풍의 비밀

고리를 두른 토성의 원경
토성 북극에 걸린 육각형은, 관측이 시작된 이래 같은 자리에 있다.

발견 경위와 존속 기간

토성 극지방 폭풍의 근접 이미지
폭풍은 흩어지지 않고, 형태를 유지한 채 돈다.

시작하기 전에 잠깐. 한 행성의 극점에, 완벽한 육각형이 새겨져 있다면 믿겠는가.

토성 북극에는 여섯 개의 변을 가진 거대한 구름 구조가 존재한다.

이 형상이 처음 인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80년에서 1981년 사이였다.

보이저 일호와 이호가 토성을 스쳐 지나가며, 그 북극을 처음으로 촬영했다.

사진 속에는, 자연이 그렸다고는 믿기 어려운 또렷한 육각형이 담겨 있었다.

당시에는 그것이 잠깐 스쳐가는 우연한 무늬인지, 오래 머무는 구조인지 알 수 없었다.

답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찾아온다.

약 27년이 지난 2006년에서 2007년, 카시니 탐사선이 다시 토성 북극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여전히 같은 육각형이 자리하고 있었다.

거의 3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그 형태는 무너지지 않았다.

여기서 하나의 사실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27년이라는 시간은, 토성의 일년에 가깝다.

토성이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데에는 약 29.5지구년이 걸린다.

즉 이 육각형은, 토성의 한 해를 온전히 견뎌낸 셈이다.

계절이 바뀌고, 극점에 밤과 낮이 오가는 동안에도 그 구조는 유지되었다.

이것은 육각형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놀랍도록 안정된 구조임을 말해준다.

그 규모는 상상을 넘어선다.

육각형을 이루는 변 하나의 길이는 약 13,800킬로미터에 이른다.

우리가 발 딛고 선 지구의 지름이 약 12,742킬로미터다.

변 하나가, 지구 하나보다도 길다는 뜻이다.

구조 전체의 폭은 약 30,000킬로미터에 달한다.

지구 여러 개를 나란히 품고도 남을 크기다.

그런데 이 완벽한 대칭에는, 풀리지 않은 물음이 하나 숨어 있다.

토성의 남극에는, 이와 대칭을 이루는 육각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에서 관측되는 것은 소용돌이, 오직 회오리치는 소용돌이뿐이다.

왜 북극에만 여섯 개의 변이 새겨졌을까.

이 비대칭은, 여전히 답을 기다리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로스비파(Rossby wave)와 제트기류 사행 가설

행성 대기의 제트기류가 굽이치는 모습
굽이치는 제트기류가 만드는 파동이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그렇다면 이 완벽한 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설명은 바람에서 시작한다.

토성의 북극을 둘러싼 거대한 제트기류가 있다.

이 기류는 극을 감싸고 하나의 고리처럼 흐른다.

그런데 그 흐름은 곧게 돌지 않는다.

기류는 좌우로 물결치듯 굽이친다.

과학자들은 이 굽이침을 사행이라 부른다.

강물이 평야를 지나며 구불구불 휘어지는 것과 같다.

이렇게 굽이친 물결이 제자리에 멈춰 굳어질 때, 정상파가 태어난다.

한 바퀴를 도는 동안 물결이 몇 번 출렁이는지, 그 횟수를 파수라 한다.

토성의 육각형은 파수가 육인 로스비파의 정상파 패턴에 해당한다.

극을 한 바퀴 도는 동안 정확히 여섯 번 꺾이는 물결.

그 여섯 번의 마루와 골이, 우리 눈에는 여섯 개의 변으로 보인다.

이 기류의 속도는 놀랍도록 빠르다.

관측된 풍속은 초속 약 백미터.

시속으로는 약 320킬로미터에 이른다.

지구에서 가장 강한 태풍조차 넘어서는 바람이 극을 끝없이 돌고 있다.

그리고 그 육각형 안쪽에는 또 하나의 세계가 있다.

중심에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자리한다.

시속 약 150킬로미터로 회전하는 이 구조는, 지구의 허리케인과 닮았다.

여섯 개의 변으로 둘러싸인 방 한가운데, 눈을 가진 폭풍이 돌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여섯일까.

여기서 이론은 한 가지 조건을 말한다.

제트기류는 위도에 따라 속도가 다르다.

극에 가까운 쪽과 먼 쪽의 속도 차이, 그 기울기를 시어라 부른다.

이 속도 프로파일이 특정한 형태를 이룰 때, 오직 특정한 파수의 파동만이 살아남는다.

다른 물결들은 이내 흩어지거나 서로를 지운다.

그러나 그 조건에 들어맞는 파동 하나는, 흔들림 없이 제자리를 지킨다.

그렇게 살아남은 것이 파수 육의 물결이었다는 것이 주류 가설이다.

바람의 기울기가 스스로 여섯이라는 수를 골라냈다는 이야기다.

2010년 옥스퍼드 실험실 재현 실험

회전하는 원통형 수조 실험 장치
실험실에서 액체를 회전시키자 비슷한 다각형이 나타났다.

토성의 육각형은 너무 멀리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을 지구로 가져오기로 했다.

2010년, 영국 옥스퍼드대학 연구실에 작은 물통 하나가 놓였다.

아나 아기아르와 피터 리드, 두 사람이 이끄는 연구팀이었다.

그들이 던진 질문은 단순했다.

거대한 행성의 폭풍을, 실험실 탁자 위에서 다시 만들 수 있을까.

장치는 놀랄 만큼 소박했다.

투명한 원통 안에 액체를 채운다.

그리고 그 액체를 회전시킨다.

핵심은 하나의 속도가 아니라, 두 개의 속도였다.

안쪽과 바깥쪽을 서로 다른 빠르기로 돌린 것이다.

속도가 다른 두 흐름이 맞닿는 자리.

그곳에서 유체는 서로를 밀고 당기며 어긋나기 시작했다.

이 어긋남을 유체역학에서는 전단이라 부른다.

층과 층이 미끄러지며 생기는 긴장이다.

그리고 그 긴장이 임계점을 넘는 순간, 물의 표면에 무언가가 나타났다.

매끄럽던 원이, 각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원통 안쪽 경계선이 반듯한 다각형으로 접혀 들어갔다.

연구팀은 회전 속도의 비율을 조금씩 바꿔 보았다.

안과 밖의 속도 차이를 조율할 때마다, 도형이 바뀌었다.

어떤 값에서는 삼각형이 떠올랐다.

값을 바꾸자 사각형이, 다시 오각형이 나타났다.

그리고 특정한 비율에서, 물통 속에는 육각형이 새겨졌다.

토성이 극지방에 그려 둔 바로 그 형태였다.

이 실험은 조용한 방식으로 하나의 오해를 걷어냈다.

우리는 오랫동안 숫자 육에 특별한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여섯이라는 숫자에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 거라고.

하지만 물통은 다르게 말했다.

육각형은 선택된 형태가 아니었다.

그저 어떤 회전 조건이 우연히 만들어 낸 하나의 결과였다.

조건이 조금만 달랐다면 그것은 오각형이었을지도 모른다.

토성의 육각형은 특별해서 여섯이 된 것이 아니다.

여섯이 되기 좋은 조건에, 마침 토성이 놓여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 실험은 또 하나의 가설에 힘을 실었다.

회전하는 유체는 특정 조건에서 스스로 불안정해진다.

이를 순압 불안정이라 부른다.

이 불안정이 흐름을 규칙적인 물결로 접어 넣고, 그 물결이 다각형이라는 정상파로 굳어진다는 생각이다.

탁자 위 작은 물통과, 지구보다 큰 행성의 폭풍이 같은 언어로 말하고 있었다.

육각형은 왜 하필 '6'인가 — 파수 선택 문제

육각형 구조를 도식화한 극지방 지도
왜 하필 여섯인가 — 파수가 선택되는 조건이 문제다.

앞서 우리는 이 육각형이 어떻게 그려지는지를 보았다.

이제 더 깊은 질문 하나가 남는다.

왜 하필 여섯인가.

파동은 원둘레를 여러 조각으로 나눌 수 있다.

다섯일 수도, 일곱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토성의 극지방은 흔들림 없이 여섯을 택했다.

이것은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은 물음이다.

과학자들이 세운 모델은 이렇게 말한다.

특정한 숫자가 선택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제트기류의 폭이 얼마나 넓은가.

그 흐름이 얼마나 빠른가.

어느 위도에 자리 잡고 있는가.

그리고 토성이 얼마나 빠르게 도는가.

이 네 가지가 하나로 얽히며, 특정한 파동의 수를 선호하게 된다.

토성의 하루는 짧다.

한 바퀴 도는 데 열점칠시간이면 충분하다.

지구보다 두 배 이상 빠르게 자전하는 셈이다.

이 빠른 회전은 강한 코리올리 효과를 만든다.

흐르는 대기를 옆으로 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힘이다.

바로 이 힘이 물결을 빚고, 파동을 매끈한 각으로 다듬는다.

실험실에서도 이 과정을 재현할 수 있다.

회전하는 물통 속에 흐름을 만들면, 가장자리에 다각형이 나타난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회전 속도를 바꾸면, 흐름의 세기를 바꾸면.

여섯 각이던 무늬가 다섯으로, 일곱으로 변한다.

시뮬레이션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온다.

그러니 여섯은 필연이 아니다.

여섯은 지금 토성이 놓인 조건이 만들어낸 하나의 답일 뿐이다.

조건이 달라졌다면, 우리는 오각형이나 팔각형을 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구는 어떤가.

지구의 극에도 극 소용돌이가 있다.

차가운 대기가 극 주위를 도는 거대한 흐름이다.

이 소용돌이 가장자리도 물결처럼 구불거린다.

우리는 그것을 제트기류의 사행이라 부른다.

하지만 지구의 흐름은 뚜렷한 다각형으로 고정되지 않는다.

지구의 자전은 토성보다 느리고, 대기의 조건도 다르기 때문이다.

바다와 산맥이 흐름을 끊임없이 흐트러뜨린다.

그래서 지구의 물결은 그려지다 지워지기를 반복한다.

토성의 육각형은 그 끝에서, 홀로 완성된 그림처럼 남아 있다.

같은 물리가 두 행성에서 이토록 다른 얼굴을 갖는다.

이 대비가 지금도 연구자들을 붙잡고 있다.

색 변화와 대기 화학 관측

북극을 감싼 육각형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수십년 동안 형태를 잃지 않은 채, 토성은 계절을 따라 조용히 색을 바꿔왔다.

카시니는 그 변화를 오래도록 지켜봤다.

2012년, 육각형 안쪽은 서늘한 파란색이었다.

그러나 2016년, 그 색은 부드러운 황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네 해 사이, 폭풍의 심장은 완전히 다른 빛을 띠게 된 것이다.

무엇이 이 색을 바꿨을까.

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에 있었다.

토성 북극에 봄이 오고, 이어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오랜 어둠 속에 잠겨 있던 극지방에 다시 햇빛이 닿기 시작했다.

빛은 대기 속 분자들을 흔들어 깨웠다.

햇빛에 반응한 대기는 미세한 안개 입자, 곧 에어로졸을 만들어냈다.

이것이 광화학 스모그다.

계절이 깊어질수록 스모그는 짙어지고, 파랗던 하늘은 황금빛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그러니 이 색은 토성 북극에 찾아온 계절 그 자체의 흔적이다.

다만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색의 변화는 계절이 부른 광화학 반응일 뿐, 육각형이라는 형태를 만든 원인은 아니다.

빛이 색을 칠할 수는 있어도, 그 여섯 개의 변을 그어낸 것은 아니다.

육각형은 대기 상층부에 새겨진 무늬다.

그 무늬가 아래로 얼마나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지, 수직으로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는 아직 정밀하게 측정되지 못했다.

우리는 그 얼굴을 봤지만, 그 몸의 깊이는 여전히 모른다.

토성은 지금도 여름을 지나며 색을 바꾸고 있다.

완벽한 여섯 변은 그 자리에 남아, 다음 계절의 빛을 조용히 기다린다.

우리가 던진 물음의 절반은 답을 얻었고, 절반은 아직 저 먼 대기 속에 잠겨 있다.

그 미완의 여백이야말로, 우주가 우리를 다시 부르는 방식이다.

들어보긴 했는데, 진짜일까.
논문으로 확인하고 말합니다. — 진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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