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헤르츠 고래의 비밀, 아직도 미해결

푸른 심해를 유영하는 고래
심해에서 잡힌 52헤르츠, 주인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52헤르츠 신호의 최초 탐지와 정체 확인 경위

수중 음향을 기록하는 구형 녹음 장비
신호는 수중 청음 장비의 기록 속에 남아 있었다.

시작하기 전에 잠깐. 깊은 바다 아래에서, 누구의 것도 아닌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규칙적이었다.

살아 있는 무언가가 내는 신호였다.

이야기는 냉전의 한복판에서 시작된다.

미 해군은 소련 잠수함을 추적하기 위해, 태평양 해저에 거대한 청음 장치를 깔았다.

수중 청음 배열, 이름은 소서스였다.

바닷속을 지나가는 모든 소리를 듣기 위한 거대한 귀였다.

잠수함의 엔진음을 찾으려던 이 귀는, 뜻밖의 소리를 붙잡았다.

약 50일에서 52헤르츠.

낮고 깊은 저음이었다.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소리 가운데 가장 아래쪽, 인간 청각의 하한인 20헤르츠보다는 위에 있는 음역대였다.

들으려고만 하면, 사람의 귀에도 닿을 수 있는 소리였다.

이 신호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쫓기 시작한 사람이 있었다.

우즈홀 해양연구소의 해양생물학자, 윌리엄 왓킨스였다.

그와 동료들은 1989년부터 이 소리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서스는 군사 기밀이었다.

민간 연구자가 그 데이터에 손을 대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전환점은 1992년에 찾아왔다.

냉전이 끝나면서, 소서스의 방대한 기록이 민간 연구에 개방된 것이다.

적을 감시하던 귀가, 바다 생명의 목소리를 듣는 귀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왓킨스 팀은 그때부터 이 소리를 끈질기게 따라갔다.

1992년부터 2004년까지, 무려 12년이었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어도, 그 신호는 사라지지 않고 다시 들려왔다.

같은 주파수, 같은 리듬으로.

12년간의 추적은 2004년, 한 편의 논문으로 정리됐다.

학술지 딥시 리서치에 실린 그 기록이, 오늘날 우리가 52헤르츠 고래라고 부르는 존재의 학술적 근거가 되었다.

하나의 소리가, 비로소 이름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에는 그늘이 드리운다.

논문이 세상에 나오기 직전, 2004년, 윌리엄 왓킨스는 세상을 떠났다.

12년을 함께 따라온 그 목소리의 정체를, 그는 끝내 직접 밝히지 못했다.

바다 밑의 신호는 여전히 울리고 있었고, 그것을 쫓던 사람은 그렇게 먼저 떠났다.

왜 52Hz가 '이상한가' — 다른 고래 종의 발성 주파수와의 대비

주파수 파형을 시각화한 이미지
다른 고래들의 발성 대역과 나란히 놓으면, 이 신호만 위쪽에 있다.

그 신호가 이상하다는 말은, 무엇과 비교했을 때 이상하다는 뜻일까.

답을 얻으려면, 먼저 바다에서 가장 거대한 목소리들을 들어봐야 한다.

대왕고래, 흰긴수염고래라 불리는 이 생명은 지구 역사상 가장 큰 동물이다.

그 몸에서 나오는 대표적인 발성은, 태평양 개체군을 기준으로 약 15헤르츠에서 20헤르츠 사이에 모여 있다.

사람의 귀로는 거의 닿지 않는, 아주 낮은 울림이다.

그것은 소리라기보다 물을 통해 전해지는 진동에 가깝다.

긴수염고래, 참고래의 목소리도 낮은 자리에 있다.

이 고래는 약 20헤르츠의 펄스를 규칙적으로 내보내는 것이 전형적이다.

짧게 끊어지는 저음의 두드림.

바다의 대형 수염고래들은 그렇게, 하나같이 낮은 세계에서 노래한다.

그런데 52헤르츠는 다르다.

그것은 이들 어느 종의 전형적인 발성보다도 뚜렷하게 높은 자리에 있다.

같은 고래의 목소리라기엔, 음의 높이가 어긋나 있다.

바로 여기서 핵심적인 논쟁이 시작된다.

이 소리는 어떤 종이라고 특정할 수 없는, 비정형의 발성이라는 점이다.

대왕고래의 것이라 하기엔 너무 높고, 참고래의 것이라 하기엔 결이 다르다.

그래서 이 신호에는, 종의 이름이 붙지 못했다.

다만, 완전한 미스터리로만 남지는 않았다.

신호를 오랫동안 따라가 보면, 그 나타나고 사라지는 시기가 눈에 들어온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신호는 바다를 따라 이동했다.

그 이동의 궤적과 시간의 구조는, 대왕고래와 긴수염고래가 회유하는 길과 닮아 있었다.

즉 목소리의 높이는 낯설지만, 살아가는 방식은 대형 수염고래를 닮았다.

그래서 이것이 어떤 대형 수염고래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신비로운 관측이 있다.

여러 해에 걸쳐 이 신호를 추적하는 동안, 주파수 자체가 조금씩 낮아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52헤르츠라 이름 붙었던 그 목소리가, 시간이 흐르며 서서히 아래로 내려간 것이다.

고래는 몸집이 클수록 더 낮은 소리를 낸다.

그래서 이 변화는, 한 개체가 자라며 몸이 커진 흔적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혹은, 세월과 함께 늙어가는 한 생명의 기록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이 신호 뒤에는 자라거나 나이 들어가는 하나의 몸이 있다는 뜻이다.

이름 없는 목소리는, 그렇게 조금씩 낮아지며 여전히 바다를 건너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라는 대중 서사와 그 과학적 취약성

달빛이 비치는 밤바다의 물결
‘가장 외로운 고래’라는 이름은 과학이 아니라 이야기에서 나왔다.

그 규칙적인 신호는, 어느 순간부터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바다 밑에서 들려온 소리는 데이터의 형태를 벗고, 사람의 언어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언론과 대중문화는 이 고래에게 하나의 서사를 붙였다.

다른 고래가 알아듣지 못하는 주파수로 노래하는 존재.

그 누구도 응답하지 않는 목소리로, 평생을 혼자 떠도는 고래.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라는 이름은, 그렇게 태어났다.

이 이야기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넓은 바다 어딘가, 아무에게도 닿지 못하는 노래.

우리는 그 안에서 우리 자신의 외로움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서사에는, 과학이 붙잡을 수 있는 손잡이가 없다.

'외로움'을 입증할 직접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다른 고래가 52헤르츠 신호를 들었는지.

그 소리에 반응했는지, 다가갔는지.

그 어느 것도 관측된 적이 없다.

우리는 이 고래가 응답받지 못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응답을 확인한 적조차 없다.

외면당한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가 그 대화를 엿듣지 못했을 뿐인지도 모른다.

여기에 또 하나의 반론이 있다.

고래는 특정한 하나의 주파수만 듣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넓은 대역의 소리를 듣는다.

52헤르츠로 노래한다고 해서, 다른 주파수를 듣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다.

노래하는 음과, 들을 수 있는 음은 서로 다른 이야기다.

그러니 52헤르츠라는 목소리가, 반드시 소통 불가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고래는 어쩌면, 자신의 노래로 부르면서 남의 노래를 듣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기록으로 돌아가 보면, 더 분명해진다.

이 소리를 오랜 세월 추적한 윌리엄 왓킨스.

그는 이 고래를 단 한 번도 '외롭다'고 규정한 적이 없다.

그가 남긴 것은 감정이 아니라, 주파수와 계절과 이동 경로였다.

외로움이라는 감상은, 훨씬 나중에 미디어가 덧붙인 옷이었다.

그 옷을 세상에 널리 입힌 것은 하나의 영화 프로젝트였다.

2015년, 조슈 제만 감독의 다큐멘터리 '52, 가장 외로운 고래를 찾아서'.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를 비롯한 이들이 후원한 이 프로젝트는, 외로운 고래라는 이야기를 대중의 마음속에 확실히 새겨 넣었다.

과학이 침묵한 자리에, 이야기가 흘러들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사실보다 훨씬 멀리 헤엄쳐 갔다.

52Hz 신호가 '단일 개체'인가 '집단'인가 — 미해결 핵심 질문

그렇다면 이 목소리는, 정말 한 마리에게서 나오는 것일까.

지금까지 우리는 이 신호를 외로운 한 마리 고래로 여겨 왔다.

하지만 그 전제조차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다.

이 신호가 단일한 개체에서 나오는지, 아니면 여러 마리로 이루어진 미지의 집단에서 나오는지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단서는 오래된 기록 속에 숨어 있었다.

윌리엄 왓킨스가 남긴 방대한 음향 데이터를 다시 들여다본 연구자들은 이상한 정황을 발견했다.

같은 시기에, 서로 떨어진 여러 지점에서 비슷한 신호가 잡힌 흔적이 있었다.

한 마리라면, 같은 시각에 여러 바다에 동시에 존재할 수는 없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이 목소리는 애초에 한 마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2010년, 캘리포니아 앞바다에서 또 하나의 보고가 나왔다.

여러 대의 수중 청음기가 하나의 배열로 늘어서 있었다.

그런데 그 여러 지점이 거의 같은 시각에, 비슷한 주파수의 신호를 함께 포착했다.

이 관측은 복수 개체 가설에 무게를 실어 주었다.

어쩌면 이 특이한 목소리를 내는 무리가, 어딘가에 조용히 흩어져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목소리의 정체를 두고, 또 다른 설명도 제시된다.

바로 잡종 가설이다.

대왕고래와 긴수염고래 사이에서 태어난 교잡 개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두 종 사이의 잡종은 실제로 확인된 적이 있다.

서로 다른 두 종의 특성이 한 몸에 섞이면, 발성 역시 그 어느 쪽과도 닮지 않은 형태가 될 수 있다.

비정형적인 목소리를, 이 가설은 자연스럽게 설명해 낸다.

또 다른 가능성도 남아 있다.

태어날 때부터 발성 기관에 기형이 있거나, 질환으로 소리 내는 구조가 다른 개체일 수 있다.

그렇다면 종은 평범해도, 목소리만 홀로 어긋나 있는 셈이다.

한 마리인가, 무리인가.

잡종인가, 기형인가.

이 모든 가설은 지금 나란히 놓여 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결정적인 증거로 확정되지는 못했다.

바다는 여전히 답 대신, 더 많은 질문을 돌려보내고 있다.

실제 목격·촬영 시도의 완전한 실패

망망대해에 떠 있는 관측 부표
소리는 잡히는데, 모습은 아직 한 번도 촬영되지 않았다.

그 신호는 오랜 세월 바다를 가로질러 우리에게 닿았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하나 있다.

발견 이후 수십 년이 흐르는 동안, 이 고래를 두 눈으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진도, 영상도, 단 한 장, 단 한 컷 남아 있지 않다.

우리는 그 목소리를 들었지만, 그 몸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이 고래를 찾으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5년, 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를 비롯한 이들이 후원한 탐사 항해가 캘리포니아 앞바다에서 이루어졌다.

연구자들은 넓은 바다로 나가 그 개체를 특정하고, 관찰하려 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그 고래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왜 이토록 찾기 어려운 것일까.

문제는 소리의 성질에 있다.

물속에서 고래의 소리는 수백킬로미터를 가로질러 퍼져 나간다.

그래서 신호를 탐지한 지점과 실제로 그 고래가 헤엄치는 지점 사이에는 거대한 공간 오차가 놓인다.

목소리는 여기서 들리지만, 그 몸은 아득히 먼 어딘가에 있다.

이 광활한 어긋남 속에서, 하나의 개체를 물리적으로 추적하는 일은 극히 어렵다.

소리는 있으나, 몸은 없다.

이 기묘한 구조가 오랜 세월 이야기를 지탱해 왔다.

대중에게는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고, 학자들에게는 확정할 수 없는 물음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그 존재를 안다.

그러나 그 존재를 붙잡지는 못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목소리는 어두운 바다 어딘가를 지나가고 있을지 모른다.

들리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의 노래로.

우리가 끝내 다 헤아리지 못한, 깊고 푸른 침묵 속에서.

들어보긴 했는데, 진짜일까.
논문으로 확인하고 말합니다. — 진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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