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적점은 왜 400년째 안 사라질까
관측 역사와 '동일 폭풍' 여부의 불확실성
하나의 폭풍이 사람보다 오래 산다면, 그것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목성 남반구에 붉은 소용돌이 하나가 떠 있다.
우리는 그것을 대적점이라 부른다.
그런데 이 폭풍이 정확히 언제 태어났는지, 아무도 확신하지 못한다.
이야기는 16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천문학자 조반니 카시니가 목성의 표면에서 어떤 반점을 발견했다.
그는 그것을 영속 반점이라 이름 붙였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카시니와 그의 동료들은 그 얼룩을 여러 해 동안 뒤쫓았다.
그러나 1713년, 기록이 갑자기 끊긴다.
그 뒤로 백년이 넘도록, 목성의 붉은 눈은 어둠 속으로 사라진 듯했다.
우리가 지금 보는 대적점의 연속적인 기록은 훨씬 뒤에야 시작된다.
1831년, 하인리히 슈바베가 남긴 한 장의 스케치.
거기 다시, 커다란 붉은 반점이 그려져 있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 폭풍은 한 번도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여기서 오래된 수수께끼가 태어난다.
카시니가 본 반점과, 슈바베가 그린 반점은 같은 폭풍인가.
아니면 하나가 스러지고, 그 자리에 다른 하나가 피어난 것인가.
아직 아무도 이 물음에 답을 내리지 못했다.
만약 둘이 서로 다른 폭풍이라면, 대적점의 수명은 적어도 200년이다.
그러나 만약 같은 폭풍이라면, 그 나이는 350년을 넘어선다.
한 개인의 생애로는 결코 지켜볼 수 없는 시간이다.
십구세기 후반, 이 붉은 눈이 유독 짙어진 시기가 있었다.
1878년부터 1882년 사이, 대적점은 어느 때보다 붉고 또렷해졌다.
천문학자들은 망원경을 그곳으로 모았다.
한 폭풍이, 사람들의 시선을 다시 붙잡은 순간이었다.
그렇게 목성의 소용돌이는 기록의 강 위로 떠올랐다.
그러나 그것이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여전히 안개 속에 있다.
제트기류에 갇힌 반영구적 고기압 소용돌이 구조
수백 년을 견뎌온 그 붉은 눈동자를, 이제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자.
우리는 흔히 폭풍이라 하면 아래로 빨려드는 소용돌이를 떠올린다.
하지만 대적점은 그런 저기압이 아니다.
이것은 고기압성 소용돌이다.
주변보다 위로 높이 솟아오른, 거대한 대기의 언덕이다.
솟아오른 만큼 상층 구름은 더 차갑다.
높은 곳의 구름 꼭대기는 주변보다 온도가 낮게 관측된다.
그 붉은 봉우리는 남위 약 22도에 자리 잡고 있다.
남반구의 고기압이기에, 반시계 방향으로 천천히 돈다.
한 바퀴를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엿새다.
지구의 어떤 폭풍보다도 느리고, 어떤 폭풍보다도 오래된 회전이다.
그런데 이토록 거대한 소용돌이가, 어떻게 흩어지지 않고 제자리를 지킬까.
그 비밀은 위아래를 감싼 두 개의 바람 강에 있다.
대적점 북쪽에는 서쪽으로 흐르는 제트류가 있다.
남쪽에는 반대로, 동쪽으로 흐르는 제트류가 있다.
방향이 어긋난 두 개의 강물 사이에 소용돌이가 끼여 있는 것이다.
마치 두 손바닥 사이에 놓인 구슬처럼.
한쪽 손은 밀고, 다른 손은 당긴다.
그 어긋난 힘이 오히려 구슬을 돌리고, 제자리에 붙들어 둔다.
롤러 베어링이 회전하면서도 흔들리지 않듯이.
두 제트류는 소용돌이를 가두는 벽이자, 그것을 돌리는 손이다.
그래서 대적점은 흩어지지 않고, 남위 22도라는 위도의 띠 위를 맴돈다.
여기에 목성만의 조건이 하나 더 더해진다.
지구의 태풍은 육지에 닿는 순간 급격히 힘을 잃는다.
땅과의 마찰이 폭풍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성에는 밟고 설 단단한 땅이 없다.
발밑까지 온통 기체와 유체로 이루어진 세계다.
폭풍을 멈춰 세울 해안선도, 산맥도, 그 어떤 경계면도 존재하지 않는다.
소멸시킬 벽이 없으니, 소용돌이는 끝없이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회전만으로는 부족하다.
돌아가는 것에도 힘이 필요하다.
대적점은 그 힘을 주변에서 끌어모은다.
목성의 대기에는 크고 작은 소용돌이들이 수없이 떠다닌다.
그 작은 소용돌이들이 붉은 눈동자에 가까이 다가오면, 빨려 들어가 하나로 합쳐진다.
2019년, 천문학자들은 대적점의 가장자리가 붉은 파편처럼 떨어져 나가는 모습을 관측했다.
한때는 소멸의 징후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연구자들은, 그것이 오히려 작은 소용돌이들을 삼키고 뒤섞이는 과정이었을 가능성을 지적한다.
작은 것들을 흡수하며, 잃은 에너지를 다시 채워 넣는 것이다.
붉은 눈동자는 홀로 버티는 것이 아니다.
주변의 무수한 소용돌이를 먹으며, 오늘도 천천히 돌고 있다.
크기 축소와 형태 변화 — 실제로는 '사라지는 중'일 가능성
영원해 보이는 것에도 시간은 흐른다.
수백 년을 버텨온 저 붉은 소용돌이도, 실은 조금씩 모습을 바꾸고 있다.
십구세기 후반, 천문학자들이 망원경으로 대적점을 처음 정밀하게 측정했을 때, 그 동서 길이는 약 41,000킬로미터에 이르렀다.
지구 세 개가 나란히 들어가고도 남는 크기다.
그 시절 대적점은 목성 표면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붉은 띠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그 폭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2017년, 목성 곁을 도는 탐사선 주노와 허블 우주망원경이 다시 그 크기를 쟀다.
폭은 약 16,350킬로미터.
지구 하나가 겨우, 그리고 조금 더 들어갈 크기로 줄어 있었다.
한 세기 반 사이에, 붉은 눈은 절반 넘게 오그라든 셈이다.
변한 것은 크기만이 아니다.
허블 우주망원경이 오랜 세월 이 소용돌이를 지켜본 결과, 대적점의 형태 자체가 달라지고 있었다.
한때 길게 늘어진 타원이었던 모습이, 점점 둥근 원에 가까워지고 있다.
옆으로 퍼져 있던 폭풍이, 안으로 오므라들며 동그랗게 뭉치고 있는 것이다.
축소 속도는 관측으로 뚜렷이 느껴질 만큼 빠르다.
그래서 일부 연구자는 조심스러운 예측을 내놓는다.
이 속도라면, 대적점은 20일세기가 끝나기 전에 사라질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소멸의 마지막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에 다른 목소리가 있다.
또 다른 연구자들은 이것이 끝이 아니라, 단순한 주기적 변동일 뿐이라 반박한다.
수백 년을 살아온 폭풍이라면, 커졌다 작아지는 숨결의 한 주기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축소는 소멸의 전조가 아니라, 언젠가 다시 부풀어 오를 잠깐의 수축일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 옳은지,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한다.
다만 확실한 것은 하나다.
저 붉은 눈은,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모습을 바꾸고 있다는 사실이다.
붉은색의 원인 — 미해결 화학 문제
소용돌이는 수백 년째 그 자리에서 돌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가장 단순한 질문 하나에 답하지 못한다.
저것은 왜 붉은가.
붉은색을 내는 물질을 과학자들은 크로모포어라 부른다.
색을 입히는 자, 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 정체는 지금껏 확정되지 않았다.
가장 유력한 설명은 대기 맨 위쪽을 향한다.
상층에는 암모니아가 있고, 아세틸렌 같은 탄소 화합물이 떠돈다.
그 위로 태양의 자외선이 쏟아진다.
빛은 분자를 부수고, 다시 이어붙인다.
이 광화학 반응이 붉은 화합물을 빚어낸다는 것이다.
실험실에서 그 장면을 흉내 내본 적이 있다.
같은 성분에 자외선을 쬐자, 대적점과 닮은 붉은빛이 실제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끝난 이야기는 아니다.
또 다른 가설은 시선을 정반대로, 아래로 돌린다.
소용돌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끌어올려진다는 것이다.
인, 혹은 황을 품은 화합물이다.
이들이 높은 곳으로 솟아 색을 만든다는 설명이다.
빛이 위에서 물들이는가, 아니면 심연이 아래에서 밀어올리는가.
두 이야기는 아직 어느 쪽도 승리하지 못했다.
그리고 색 자체가, 결코 한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십구세기 말, 대적점은 유난히 짙고 선명했다.
그러다 이십세기 중반에는 눈에 띄게 옅어졌다.
색의 짙기가 수십 년을 주기로 흔들린 것이다.
정체를 밝히기도 전에, 관측 그 자체가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우리는 그 붉음을 수백 년째 바라보면서도, 여전히 그 이름을 부르지 못한다.
주노 탐사선이 밝힌 폭풍의 수직 깊이
수백 년을 버텨온 이 붉은 폭풍의 비밀은, 우리가 보던 표면 아래에 숨어 있었다.
그 아래를 처음으로 들여다본 눈이 있다.
2016년, 목성 궤도에 진입한 나사의 탐사선 주노다.
주노는 눈으로 보는 대신, 마이크로파를 읽었다.
마이크로파 복사계, 엠더블유알이라 불리는 이 장비는 구름층 아래에서 새어 나오는 미세한 열을 감지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깊은 곳의 온도와 밀도를, 층층이 벗겨 읽어내는 도구다.
주노가 대적점 위를 스쳐 지날 때, 놀라운 신호가 잡혔다.
붉은 소용돌이가 표면에서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폭풍의 뿌리는 최소 삼백에서 500킬로미터 아래까지 뻗어 있었다.
우리가 보던 붉은 원은, 거대한 구조 꼭대기의 얇은 껍질에 불과했다.
2021년, 그 관측이 하나의 그림으로 정리되어 발표되었다.
대적점은 주변 대기보다 훨씬 깊게 뿌리내리고 있었다.
표면만으로 짐작하던 것보다 아득히 거대한, 삼차원의 몸을 가진 존재였다.
과학자들은 이 깊은 뿌리에 주목했다.
뿌리는 단순한 꼬리가 아니었다.
아래로부터 열과 각운동량을, 폭풍의 심장에 끊임없이 공급하는 통로였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이 힘이, 수백 년의 지속을 떠받쳐 온 것이라 해석한다.
식지 않는 이유도, 멈추지 않는 이유도, 그 깊은 곳에 있었다.
다만 한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수백킬로미터라는 깊이도, 목성 대기 전체 앞에서는 얕다.
목성의 대기는 수천킬로미터 아래까지 이어진다.
그에 비하면 대적점은, 넓게 퍼졌으나 얇은 원반에 가깝다.
거대한 바다 위에 떠 있는, 뿌리 얕은 소용돌이다.
그럼에도 그 얕은 원반은, 사람의 시간을 넘어 돌고 있다.
에너지 수지 — 왜 소멸하지 않는가에 대한 시뮬레이션 논쟁
지구의 폭풍을 떠올려본다.
가장 거대한 태풍조차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바다 위에서 태어나 육지에 부딪히고, 마찰과 에너지 소산 속에서 힘을 잃는다.
며칠, 길어야 몇 주면 그 소용돌이는 흩어져 사라진다.
그런데 대적점은 수백 년을 견뎌왔다.
같은 물리 법칙 아래 있으면서도, 어떻게 이 폭풍만은 소멸하지 않는가.
이 물음 앞에서 과학은 오래 머물러 있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하버드와 보이지앙 연구팀은 삼차원 수치 시뮬레이션으로 하나의 실마리를 내놓았다.
대적점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 주위에는 작은 반대 방향 소용돌이들이 끊임없이 태어난다.
거대한 붉은 눈은 이 작은 소용돌이들을 하나씩 삼킨다.
병합하고, 흡수하며, 그들이 지녔던 운동 에너지를 자기 것으로 만든다.
연구팀은 바로 이 흡수 과정이 폭풍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핵심이라고 제시했다.
작은 것들을 먹어치우며, 거대한 것은 스스로를 지탱한다.
또 하나의 가설은 목성 깊은 곳을 향한다.
목성은 태양에서 받는 열보다 더 많은 열을 스스로 내뿜는다.
받는 것의 약 1.6배에서 두배에 이르는 열이다.
그 열은 행성 내부에서 솟아오르는 심층 대류가 된다.
깊은 곳에서 올라온 에너지가, 표면의 폭풍에 끊임없이 연료를 공급한다는 것이다.
바다도 육지도 없는 세계에서, 소용돌이는 멈출 이유를 찾지 못한다.
그러나 여기에 아직 풀리지 않은 모순이 남아 있다.
앞선 관측들은 대적점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이론들은 '무한히 지속되는' 폭풍을 그려낸다.
축소하는 현실과, 영원을 말하는 모델 사이의 간극.
그 간극은 아직 정량적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우리는 이 붉은 눈이 왜 사라지지 않는지, 여전히 온전히 알지 못한다.
수백 년을 돌아온 이 소용돌이는, 지금도 조용히 돌고 있다.
언젠가 그 답이 밝혀질 때까지, 목성은 붉은 눈을 뜬 채 우리를 바라본다.
들어보긴 했는데, 진짜일까.
논문으로 확인하고 말합니다. — 진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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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상의 영상·이미지·음성은 AI로 생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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